<분수대>진실의 행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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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 36대 대통령을 지낸 린든 존슨이 상원의원 때의 일이다.몇몇 기자들과 함께 텍사스의 어떤 마을을 지나다 존슨은 문득낡디낡아 거의 쓰러질 듯한 한 오두막집을 가리키며 「저것이 내가 태어난 집」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그 때 마침 곁에있던 어머니가 잘못을 지적하고 나섰다.그 집보다 훨씬 좋은 집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그러자 존슨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곳이 있게 마련인데 어디서 태어났든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며 얼버무렸다.
존슨의 신뢰성 부족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인용되는 에피소드다.
실제로 존슨은 대통령에 오르고난 후 여러차례에 걸쳐 국민을 속였다.특히 월남문제에 대해선『협상에 의한 평화를 이룩하려 노력하고 있으며,전쟁의 심화는 결코 원치 않는다』고 밥먹듯 말해놓고 그 반대의 길로 치달았던 것이다.일상적인 작은 거짓말들이 결국은 큰 거짓말로 발전한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거짓말은 보통 두가지 속성을 지닌다.그 하나는 존슨의 경우처럼 거짓말이 습관화하다 보면 결국 작은 거짓이 큰 거짓을 낳는다는 것.다른 하나는 거짓이 수없이 되풀이되다 보면 진실을 이야기해도 믿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그 후자(後者 )의 속성을가장 실감있게 대변하는 것이 영국 우화(寓話)『늑대와 양치기소년』이다.한밤중에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쳐 마을사람들을 골탕먹이던 소년이 같은 짓을 몇차례 되풀이하다가 마침내 진짜로 나타난늑대의 밥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렇잖아도 정치인들의 온갖 허언(虛言)에 이골이 난 국민들은최근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을 둘러싼 정치인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속에서 마치 양치기소년에게 골탕먹은 마을사람들의 심정이 돼가고 있다.누구의 어떤 말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다.발설자를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다가 눈물을 흘리며 사과한 것도,5,000억원이니 1,700억원이니 하는 액수도,20억원을 받았다는「고백」도,대선자금이니 하사금이니 하는 것도 모두 거짓말일 것이라는 국민들의 철저한 불신을 과연 어찌할 것인가.70년대에 김추자(金秋子)가 불러 유행했던 『거짓말이야』라는 대중가요가 다시금 리바이벌되려는 기미를 보이는 세태가 마음을 울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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