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말 바꾼 鄭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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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석 정치부 기자

지난 14일 KBS와 MBC가 예고방송까지 했던 두 건의 탄핵 관련 토론회가 무산됐다.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민주당 김경재 의원이 일방적으로 불참했기 때문이다. 이때 열린우리당 신기남 상임중앙위원은 이렇게 분개했었다.

"그렇게 자신 없으면 그런 짓(탄핵안 가결)은 왜 했나. 당당하게 나와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역시 예고방송까지 나갔던 25일의 YTN 주최 5당 대표 토론이 정작 정동영 의장의 거부로 취소됐다.

계속되는 '부자 몸조심'일까, 10여일 만에 과거를 잊은 것일까. 鄭의장은 이미 지난 11일 양당 대표를 상대로 탄핵 국면에 대한 TV 토론을 제안해 놓은 상태였다. YTN 토론회에도 鄭의장이 5당 대표 중 가장 먼저 나오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민련에서 김종필 총재 대신 김학원 선대위원장이 토론에 나온다고 하자 방향을 틀었다. 격을 따지기 시작했다. 선대위원장도 아닌 선대본부장에 내정된 신기남 위원을 대신 보내겠다고 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이를 수용할 리 만무했다. 결국 양당의 토론 펑크를 비난하던 鄭의장 측이 이번 토론회를 무산시킨 셈이다. 내건 명분과 달리 속셈은 "박근혜 대표를 키워주기 싫었다"고 열린우리당 핵심 관계자가 실토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鄭의장이 얼마나 자기 중심을 지켰느냐다. 당 대변인실은 "鄭의장은 당일 아침까지 YTN 토론회 출연을 준비했었다"고 설명했다. 주변의 건의로 갑작스레 방침을 바꿨다는 얘기다. 최근 열린우리당은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을 돕기 위해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가 출마한 경남 창원을에 공천하지 않으려다 입장을 선회했다. 이 과정에도 鄭의장 주변 보수 인사들의 권유가 있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정치란 다른 정당이 아닌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고 열린우리당은 강조한다. 하지만 국민과의 약속보다 정치적 고려를 우선하는 인상이다. 뒤늦게 鄭의장 측은 朴대표와의 1대1 토론을 제의해온 KBS의 제안(26일)에 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토론은 나머지 3당이 문제 삼으면 성사가 어렵다. 다른 당은 토론 상대가 아니란 뜻인지, 약속의 의미는 뭔지, 그리고 이것이 요즘 강조하는 겸손인지 궁금하다.

강민석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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