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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를 知의 세계로] 4. 정치·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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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공간 '수유+너머'가 권하는 정치.사회 분야의 책 5권은 청년 지식인들의 자기 성찰과 반란, 자유의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지식사회가 생산한 지식들을 바탕으로 청년들의 성찰을 도울 수 있는 내용이 많다. 그리고 지식사회의 고루한 현학으로 외벽을 치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것은 이 책들의 또 다른 미덕이다.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라는 부제가 붙은 '전쟁과 사회'(김동춘, 돌베개)는 한국전쟁을 정치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연구서다. 민중과 국가 지도자들이 피란과정에서 보인 행태, 적대 관계였던 남북한 정권의 지배양식, 사회.국가의 묵인으로 이뤄진 민간인 학살 등을 통해 한국전쟁의 역사를 복원하고 있다. '누가 먼저 쏘았는가'로 좁혀진 한국전쟁에 대한 논의를 사회 내부에 대한 성찰로 연결시켰다.

'탈분단시대를 열며'(조한혜정 외, 삼인)도 갈등과 대립으로 정형화된 분단을 공존으로 전환하기 위한 반란을 꿈꾼다. 분단에 대한 연구가 통상 매달려왔던 정치.경제.군사 등과 같은 체제적 권력에서 벗어나 문학.예술.영화 .언어.이미지 등 문화적 감수성에 초점을 맞췄다. 문화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다양성'과 '공존'의 논리는 분단에 대한 정형화된 인식을 반성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나아가 이 책은 민족에 대한 개념도 재검토하기를 강요한다. 전통적으로 단일하고 동질적인 개체의 복제로 생각했던 '민족'도 '차이의 공존'이라는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도 우리 삶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그 영향 때문일까. 지식인들 사이에는 세계화가 꼭 바람직하지는 않더라도 피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여기에 반기를 든 책이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이주명, 필맥)다.

반세계화 운동은 구심점이 없고 논리가 빈약하며, 그 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반대하는 성향의 존재로 이해하기 쉽다. 이 책은 '세계화에 관한 국제포럼'(IFG)의 핵심 이론가와 활동가들이 3년간 연구와 토론 작업을 벌여 얻은 결과를 모아놓은 것이다.

서구에 의한 서구 중심적 근대화에 반란을 꿈꾼다는 점에서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호지,녹색평론사)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이 책은 미래를 통해 더 나은 세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돌이켜봄으로써 지금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서구식 개발'에 반란을 꿈꾸고 있다.

서부 히말라야 고원에 위치한 라다크,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황량한 고장이다. 빈약한 자원,혹심한 기후 등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검소한 생활과 협동, 그리고 무엇보다 생태적 지혜를 통해 천년 넘게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왔다. 오랜 세월 생태적 균형과 사회적 조화를 유지해오던 이곳에 개발의 손길이 닿으면서 환경 파괴와 사회적 분열이 생겨나고 인플레이션과 실업이 등장했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현대 사회에 대한 문명비판임과 동시에 사회적.생태적 재앙에 직면한 현대사회에 대한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청년 지식인들이 성찰을 강요받는 주제가 '젠더'다. '이갈리아의 딸들'(게르드 브란튼베르그, 황금가지)은 남성과 여성의 위치가 뒤바뀐 세계 이갈리아의 일상사를 그린 소설이다. 남성이 가정을 지키고 모든 사회활동은 여성이 책임지고 기도도 '하나님 어머니'로 시작한다. 무도회에 초대받은 남성들은 브래지어 대신 '페호'라는 남성의 성기 가리개를 착용한 채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연신 땀 냄새, 옷매무새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때 페호 속에 감춰진 남성을 훔쳐보며 거만한 자세로 야릇한 시선을 흘리고 있는 여성들….

반란은 언제나 큰 대가를 요구한다. 하지만 지적 성찰을 통한 반란은 새로운 가능성이며 자유다. 청년 지식인들도 책을 통해 반란을 꿈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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