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죽음 앞의 인간' 달라도 너무 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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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 플랑드르 화가 피테르 브뤼겔의 ‘죽음의 승리’ 부분도. 기독교적 관점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로 가득차 있다.

로마에 가면 카푸치노 승단의 멋진 예배당을 볼 수 있다. 이 예배당은 실은 수도승들의 무덤이자 납골당으로, 내부가 인간의 뼈와 미라로 아름답게(?) 장식돼 있다. 검붉은 바닥 아래에서는 죽은 수도승들의 시체가 썩어가고, 말끔히 썩은 시체의 뼈는 제단이 되고, 벽의 장식이 되고,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된다. 복도의 끝에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생각하라)의 경구가 적혀 있었다. "우리도 한때는 너희와 같았었고, 너희도 언젠가 우리처럼 될 것이다."

우리 눈에는 몰취향한 '엽기'로만 보이나, '카푸치노' 커피를 마시며 산다는 그 승단의 수도승들에게는 다를 게다. 카타콤베(지하묘지)에 들어갔을 때 내 기분도 그랬다. 50만구가 넘는 기독교인들의 시체가 만들어낸 거대한 네크로폴리스(죽음의 도시).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 지하동굴이 으스스하게 느껴질지 모르나, 기독교의 세례를 받고 자란 나는 거기서 묘한 포근함을 느꼈다. 죽어서 동료들의 뼈와 어지럽게 섞인 카푸치노의 수도승들도 같은 기분이 아닐까?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진리이나, 이 불편한 진리를 처리하는 방식은 시대마다 달라진다. 그리하여 죽음도 역사를 갖게 된다. 필립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은 서구 기독교 문명 속에서 죽음의 역사를 추적한 작품으로 프랑스 미시사(微視史) 연구의 역작으로 꼽힌다.

서구에서 죽음은 다섯 가지로 얼굴을 바꾸어 왔다. 공동체의 품안에서 부활의 신앙으로 묶여 있던 초기 중세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특정한 죽음, 즉 공동체 밖에서 죽는 '객사'나 회개할 틈도 없이 죽는 '급사'였다. 중세 말에 이르러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구원의 약속에 회의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차차 죽음에 공포를 갖게 된다. 기독교가 공인된 지 1000년이 되던 종말론의 시대, 인구의 3분의 2를 휩쓸어간 페스트의 시대에 죽음은 비로소 무서운 것이 된다.

바로크 시대는 바야흐로 자연과학의 시대. 이 시기의 죽음은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신앙을 잃은 인간들은 죽음에 엄청난 공포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묘하게 거기에 마음이 끌렸다. 대학에서는 연일 해부학 공개 강의가 열렸으며, 연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이 끔찍한 장면을 구경하러 다녔고, 무덤은 종종 싱싱한 시체를 도난 당했다. 교회의 벽에 걸린 잔혹한 순교의 그림은 표면의 종교적 메시지 아래로 은밀히 신도들의 사도마조히즘 욕망을 만족시켜주었다.

낭만주의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조차 사랑하는 '타인의 죽음'이라는 안경을 통해 들여다 본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는 그 쓰라림 속에서도 묘한 달콤함이 있다. 여기서 죽음은 서서히 동경의 대상으로 변해간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달콤한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시체는 아름다운 것이다. 바로크 시대에 은밀히 모습을 드러내던 네크로필리아(시체 선호)가 이제 노골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여성들 사이에서는 '시체 같은 아름다움'이 미의 이상이 된다. 시적 수사법으로 죽음을 미화하던 낭만주의의 전략은 산업사회의 산문적 분위기 속에서 힘을 잃게 된다. 온갖 미사여구에 닳고닳은 현대인에게 시적 수사는 그저 촌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종교적 전략이 실패하고, 미학적 전략마저 사라진 오늘날, 우리는 죽음을 끔찍한 것으로 경험한다. 그토록 아름답던 죽음은 다시 무서워졌다. 이제 길은 하나, 그것을 잊는 것뿐이다. 그래서 오늘날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터부가 되었다.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자료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결론'부터 읽고 들어가는 게 좋다. 아리에스 자신이 펴낸 도판집 '죽음 앞에 선 인간'과, 서양예술에 나타난 죽음의 도상을 정리한 필자의 책 '춤추는 죽음'을 참고한다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이 책에 대한 부분적 비판을 담은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죽어가는 자의 고독'을 권한다.

죽음의 공포에 맞서는 글쟁이의 전략은 역시 불멸의 책을 써 불후의 명성에 도달하는 것. 8년 전에 이 책에 빠져 모든 일 제쳐두고 3일 밤낮을 온전히 바친 후에 이렇게 푸념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책을 쓴다면 당장 죽어도 원이 없겠다."

진중권 <문화평론가, '미학 오디세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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