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양YWCA, 성폭력 예방 인형극 공연

중앙일보

입력

할머니께 가기위해 산길을 걷던 빨간 모자를 늑대가 막아선다. 익숙한 동화 ‘빨간 모자’이야기인가 했더니 뭔가 다르다. 늑대는 빨간 모자의 몸을 만지고 뽀뽀를 해댄다. 인형극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안 돼~”하고 외친다. 무대 뒤에서 인형을 움직이는 이들은 평범한 가정주부들. 인형극을 통해 어린이 성폭력의 위험을 알리고자 무대에 섰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위치한 세진어린이집. 어린이들의 시선이 인형극 무대 위로 모아졌다. ‘스크루지 영감’ ‘빨간 모자’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각색한 인형극이 펼쳐지고, 어느새 아이들은 인형들과 함께 목이 터져라 ‘성폭력 예방노래’를 합창한다.
  “돈 주고 과자 준다고 따라가지 마세요… 울지도 말고 소리 질러요. 내 몸은 소중해~”
  이날 인형극을 공연한 이들은 지난 2006년 고양 YWCA에서 어린이 성폭력 예방 교육을 이수한 주부들. 반년여 간 성교육과 인형 만들기 등 준비과정을 거쳐 2006년 11월 첫 공연을 가졌다. 이후 아이들의 방학 때를 제외하곤 매 주 한 번씩 모여 지역 어린이 집과 초등학교에서 성폭력 예방 인형극을 공연해 왔다. 주부 7명으로 구성된 팀을 이끄는 팀장은 변경주(43·일산서구 탄현동)씨. 변씨는 “인형극을 지도해 준 목사님께 대본을 받아 팀원들이 직접 주제에 맞게 수정해 공연한다”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주제를 전하고 자기 몸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모집공고를 보고 ‘한번 해볼까?’하는 마음에 도전하긴 했지만 누구도 2년여를 계속하게 될지는 상상도 못했다. 문혜정(47·일산동구 중산동)씨는 “주변에서 너무 좋은 일을 한다고 격려해 줄때 큰 보람을 느낀다”며 “처음엔 이렇게 까지 오래 할지 몰랐는데 열심히 임하는 팀원들을 보면서 더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진다”고 말했다. 인형극을 본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몸의 소중함을 알아갈 땐 팀원들도 더 없이 기쁘다. 이향숙(66·일산동구 장항동)씨는 “처음엔 애들이 뭘 알까 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다”며 “아이들과의 교감이 느껴질 땐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팀원들이 공연을 하고 받는 비용은 10만원. 그나마 교통비와 식비를 제외하곤 고양YWCA 가정폭력상담소의 활동에 보탠다. 인형이며 무대를 사비를 털어 만들다보니 공연환경이 풍족할 리 없다. 황영심(38·여·일산서구 대화동) 고양YWCA 가정폭력상담소 상담원은 “좋은 봉사를 해 주시는 분들을 넉넉히 지원해 드리지 못해 늘 마음에 걸린다”며 “개인적으로 다른 봉사활동에도 열심인 분들이라 너무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쉽지 않은 일이련만 팀원들은 오히려 ‘우리가 감사’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영자(68·일산동구 일산동)씨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주는 것 보다는 내가 받는 보람이 더 크다”며 “늘 아이들을 만나다보니 맑아지고 젊어지는 것 같아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인형극은 고양 YWCA 가정폭력상담소(031-921-1366)에서 신청 받아 매주 금요일에 공연한다. 현재는 6월 이후 공연예약을 받고 있다.

프리미엄 이경석 기자
사진= 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