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씨 비자금 파문-연희동 현장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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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비자금 태풍」에 휩싸인 연희동은 25일 때아닌 늦가을 한파까지 몰아닥치면서 한결 썰렁한 분위기였다.
대국민사과,재산헌납,낙향,장기외유….
검찰의 직접조사시기가 임박해 오면서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대응이 주목되는 가운데 노씨의 집이 있는 연희1동은 숨막힐 듯한 긴장과 적막이 흐르고 있다.
박계동(朴啓東)의원의 폭로직후에는 분주히 오가던 6공실세들의발길도 다소 뜸해졌다.
25일에는 오후 1시30분쯤 장호경 전경호실차장이 찾아왔다.
왜 왔느냐는 보도진의 질문에 『문안인사를 왔을뿐』이라고 대답한후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30분정도 뒤인 오후 2시쯤에는 박영훈(朴永勳)비서실장이 안으로 들어갔다.이들의 표정은 모두 석고상처럼 굳어 보였다.
민자당 대구 수성갑지구당위원장인 노씨의 장남 재헌(載憲.30)씨는 사건이 터진 19일 곧바로 상경,줄곧 연희동에 머물고 있다. 그는 이번 사건이 마무리되는대로 위원장직사퇴등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자당 탈당과 함께 당분간 정계에서 발을 빼고 관망할 의향이있는 것으로 측근들은 전하고 있다.
외동딸 소영(素英.34)씨는 23일 한차례 들렀다.소영씨는 이날 오후 4시30분쯤 보도진을 피해 차고의 쪽문으로 「비상탈출」을 시도하다 들키자 지갑을 떨어뜨리는등 허둥대다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다.
노씨집과 불과 700여 거리에 있는 연희2동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의 집주변은 대조적이다.
이 사건이후 전씨집에는 외부방문객이 전혀 없었다.전씨는 24일 새벽 일찍 화요주례골프모임을 갈 정도로 평온한 상태였다.옛친구이지만 애증이 교차하는 대상인 노씨의 불행은 그에게 「강건너 불」에 불과했던 것일까.
노씨집 주변의 전경들이 잔뜩 긴장해 있는 것과는 달리 전씨집주변에 배치된 전경들은 기자들의 질문에 미소까지 띤채 순순히 응답하는 여유를 보였다.
6공비자금조성의 핵심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이원조(李源祚)씨의집은 외부와는 전화연락도 안되는등 두절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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