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돕는 ‘결혼 이민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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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 생활에 도움되고, 같은 처지의 동포를 도울 수 있어 일석이조예요.”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들은 새로 오는 동포의 길잡이다. 한국인들의 해외 이민 초기에 나타났던 현상이 이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민국’ 한국에서 재연되고 있다.

서울 가리봉동 ‘외국인노동자의 집’ 서울사무소에서 파키스탄 언어 지원을 하고 있는 쇼아입 핫산(38)도 훌륭한 길잡이다. 핫산의 부인은 한국인 양정도(42)씨다. 파키스탄 라호르 출신인 핫산은 2000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2003년 자전거 사고로 두 다리와 왼쪽 팔이 부러졌고, 2005년 공장에서 일하다 다시 왼쪽 다리가 부러지는 등 나쁜 일이 이어졌으나 병원에서 우연히 양씨를 만나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두 사람은 2006년 12월 20일 결혼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동포들이 산재를 당했는데 치료도 해주지 않고 해고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 제일 가슴이 아파요.”

그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포를 돕는 일은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일이기도 하다”며 “파키스탄 언어를 잊어버리는 날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외국인노동자의 집’ 성남센터 다문화사업부에서 일하는 필리핀 출신 마아손 숀에이자베스 마리아(36·여)는 1995년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 시어머니·남편·두 아이(9, 5세)와 함께 사는 마리아네 집은 성남센터가 ‘우리 센터 최고의 다문화가정’으로 손꼽을 만큼 화목한 가정이다.

시어머니와 남편의 노력이 컸다.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몰랐던 그녀를 위해 시어머니는 직접 그녀를 종로의 한 학원으로 이끌고 가 3개월 동안 한국어 강좌를 듣게 했다.

마리아는 지난해부터 이곳에 출근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위해 서재를 관리하고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일을 쉬는 목요일에는 어김없이 예닐곱 명의 필리핀 이주 여성이 마리아의 집에 모여든다. 이들은 먼저 한국에 시집온 마리아를 친언니처럼 따른다. 마리아는 이들에게 한국 요리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한국의 풍습도 알려주며 정착을 돕고 있다.

기획취재팀=이승녕·이충형·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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