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 “주민번호 바꿔주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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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탈북자들이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20여 개 탈북자 단체의 연합체인 북한민주화위원회(위원장 황장엽)는 19일 “탈북자 신분을 노출하는 주민등록번호를 바꿔 주지 않는다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앞서 북민위는 13일 주민등록번호 갱신을 요구하는 공문을 행정안전부에 보냈다.

북민위가 문제 삼는 탈북자들의 주민번호 뒷자리는 모두 ‘125****’ ‘225****’로 시작한다. 1999년 탈북자 교육과 정착 지원을 위해 경기도 안성에 개설된 ‘하나원’에서 받은 주민번호다. 주민번호 뒷자리 7자리 중 첫째 자리는 성별(남자는 1, 여자는 2), 2~3째 자리는 주민번호 발급 당시의 거주지를 나타낸다. 남한에 거주하는 1만3000여 탈북자 중 7000여 명이 이 번호를 가지고 있다.

탈북자들은 “이 번호 때문에 중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가장 큰 고통으로 꼽는다. 현재 중국 비자를 신청한 한국인이 이 번호를 갖고 있으면 중국대사관에서 호적등본을 요구하고 있다. 호적등본에서 탈북자임이 드러나면 대부분 비자 발급이 거부된다. 차성주 북민위 사무국장은 “많은 탈북자가 ‘중국 여행 결격사유’ 때문에 취업이 좌절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북민위는 “중국 여행에 성공한 일부 탈북자도 중국 공안과 연계된 북한 보위부에 의해 납치당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주장했다. 주민번호로 탈북자임을 식별한 중국 공안이 이 정보를 북한 보위부에 넘긴다는 것이다.

2003년 4월 중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된 김철훈·신성심 부부, 2004년 8월 압록강 부근에서 남편이 보는 앞에서 보위부에 납치된 진경숙씨 등 10여 건의 납치·실종 사건은 이런 경로를 통해 강제 북송된 것으로 북민위 측은 보고 있다.

이런 문제가 드러나자 정부는 지난해 7월 법을 개정했다. 하나원을 수료한 탈북자에 대해 정착한 지역에서 주민번호를 받도록 개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전 하나원에서 주민번호를 취득한 7000여 명에 대해선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번호를 갱신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탈북자의 주민번호를 바꿔 주면 중국 측에서 전 한국민에게 비자 발급 시 호적등본을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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