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법인의 의료기관 설립 어떻게 볼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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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 39면

최근 몇 년간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찬성하는 쪽은 의료산업 발전과 보다 나은 의료 서비스 제공 등을 이유로 드는 반면 반대하는 쪽은 의료의 공공성 저하와 과도한 이윤 추구를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경제자유특구와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외국인과 외국 법인에만 허용하는 특별 대우가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하고 있다. 즉, 그런 특정 지역 안에서는 의료인이 아닌 외국인이나 외국 영리법인도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고, 외국 의료면허 소지자도 의료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국내 의료기관에는 의무사항인 건강보험 요양기관으로서의 의무도 이들이 개설한 의료기관은 면할 수 있다.

영리법인에 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한다는 것은 의료산업에 외부 자본이 유입될 수 있고, 병원 운영을 통해 얻은 이윤을 자본 투자가에게 배분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다. 이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와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문제를 논의하는 방식은 충분한 경험이나 현실적 인식에 근거하지 못하고, 선험적 또는 배타적 주장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어 안타깝기 짝이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관 개설은 개인인 경우에는 의료인만 가능하다. 법인으로서는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의료법인과 학교법인·사회복지법인 등과 같은 비영리법인, 정부투자기관, 지방의료원,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등이 개설할 수 있다. 의료법인도 비영리법인의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의료인이 아닌 개인이나 영리법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왜 의료인이나 비영리법인만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하였을까? 병·의원은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국가가 정한 교육을 이수하고 국가가 관리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한 의료인에게만 의료업을 허가하는 면허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동시에 평균보다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와 책임을 요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영리법인이 의료기관을 운영할 경우 지나친 수익 추구로 환자의 건강에 위해를 줄지 모른다는 우려때문에 이를 금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의료업이 무조건 비영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현실적으로 개인 의료기관은 모든 법률에서 영리 사업체로 보고 있으며, 비영리법인이 설립한 의료기관도 많은 경우 법인 내부의 수익 사업체로 운영되기도 한다. 또 필자는 영리법인이 개설하는 의료기관이라고 해서 영리 추구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건강보험의 규제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제는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이 거론되는 배경이다. 특히 외국인을 위한 우수한 의료기관이 없어 투자 유치가 어렵고, 따라서 외국 영리법인에 의료기관 개설과 운영에 특혜를 주지 않으면 특별자치도나 경제자유구역·의료산업화가 성공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기간 우수 인력이 의료계에 종사해 왔으며, 우리나라 병원의 치료 성적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외국에서 심장·간이식 같은 첨단 의료기술을 배우기 위하여 우리나라를 찾고 있기도 하다. 국내 의료기관들은 저수가·저급여의 어려운 의료환경에서도 보건의료 수준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켜 왔다. 외국 기업들이 투자를 위해 보편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국내 기업과 차별대우를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굳이 의료산업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국내 의료기관을 역차별하는 제도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세계적으로 영리법인 의료기관 개설을 봉쇄하거나 의료업 자체를 비영리 사업으로 간주하는 국가는 없다. 그렇다고 영리법인이 의료시장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 역시 어디에도 없다. 높은 직업윤리와 책임이 요구되는 의료의 기본적인 속성이 지켜질 수 있도록 영리법인이 개설한 의료기관에는 보다 엄격한 제도적 견제와 사회적 감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수준의 필수 의료 서비스를 보장하면서 다양한 선택의 기회도 제공하는 슬기롭고 고차원적인 의료시장 정책을 채택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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