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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 매혹시킨 변방의 감수성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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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 03면

12일 오후 3시 서울 강남 교보문고 1층. 꼬불꼬불 긴 줄이 늘어섰다. 줄은 매장을 돌고 돌아 출입문을 지난 뒤 지상으로 통하는 계단까지 이어졌다. 줄 안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이들의 손엔 저마다 책이 들려 있었다.

한국 온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무크

『내 이름은 빨강』『새로운 인생』『눈』, 그리고 지난주 막 출간된 『이스탄불』까지. 제목은 제각각이었지만 저자는 하나였다. 오르한 파무크(Orhan Pamuk). 모국 터키에 최초로 노벨상을 안겨준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다. 마침내 껑충한 키의 주인공이 독자 사인회장에 나타났다. 파무크가 자신의 성(姓)처럼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자, 몇몇 소녀가 ‘빅뱅’이라도 본 듯이 비명을 질렀다(‘pamuk’는 터키어로 ‘솜’이란 뜻이다).

파무크가 왔다 갔다. 국제출판협회(IPA) 총회 기조연설자로 초청돼 11일 입국했다 14일 출국했다. 3박4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파무크는 서울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그중엔 이명박 대통령도 있었다). 한국인이 유난히 노벨상에 약하다지만 한국에서 파무크의 인기는 각별한 데가 있다.

앞서 묘사한 사인회장 풍경이 마침맞은 예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작가들, 예를 들어 황석영ㆍ김훈ㆍ공지영 등의 사인회에서도 앞의 그림은 좀처럼 연출되지 않는다. 파무크의 유난스러운 인기 비결, 그걸 인연이라 불러 보자. 터키와 한국, 또는 파무크와 한국인의 인연 말이다. 그리고 그 인연 몇 가지로 파무크를 말하자.

2006년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노벨상 시상식장. 파무크가 단상에 올라 수상 연설을 한다. 다음은 그 일부다.

“삶에서뿐만 아니라 문학에서의 위치에 대해 제가 품고 있었던 기본적인 명제는 제가 ‘중심부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세계의 중심부에는 우리의 삶보다 더 풍부하고 매력적인 삶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스탄불의 모든 사람, 터키의 모든 사람과 함께 이 중심부 바깥에 있었습니다.”

파무크는 터키 사람이다. 이 단순한 명제는 파무크 문학을 이해하는 출발선과 같다. 그는 터키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종교 등 제반 사안을 붙들고 늘어진다. 『내 이름은 빨강』은 중세 이슬람 화가의 예술세계를 재현하고, 『눈』은 이슬람 세력권에 놓인 기독교 문명의 문제를 건드린다. 이스탄불의 뒷골목을 걸어 보지 않고서 『검은 책』을 집는 건 독서라기보다 잠을 청하는 유력한 수단에 가깝다.

2005년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처음 방한했을 때 파무크가 바로 이 얘기를 꺼냈다. “나는 내 모국 터키처럼 전통을 지키는 한국의 모습이 참 좋습니다.” 한국과 터키는 축구에서만 형제가 아니다. 두 나라는 지구의 변두리란 점에서, 그것도 나름의 전통을 고집하는 강단 있는 변방이란 점에서 형제다. 게다가 파무크의 이모부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다.

또 한국은 아시아에서 맨 처음 파무크를 수입했고, 아시아에서 파무크가 가장 잘 팔리는 나라다. 예컨대 한국에서 『내 이름은 빨강』은 15만 부 가까이 나갔지만 일본에선 겨우 2만 부를 넘겼다. 여기엔 숨은 공로자가 있다. 파무크 전문 번역가로 통하는 이난아(한국외대 터키어과 강사)씨다.

이제껏 한국에 소개된 파무크 저작 여섯 권은 모두 이씨 번역이다. 파무크는 “내가 아직 세계적 명성을 얻지 못 했을 때 나를 먼저 알아본 나나(이난아씨 애칭)가 마냥 고마울 뿐”이라고 둘의 인연을 소개했다. “일본엔 나나 같은 사람이 없다”며 아쉬워할 정도다.

그러니까 파무크도 한국이 고마운 거다. 노벨상을 받은 뒤 한국 독자를 위해 특별히 감사 편지를 쓴 정성이나, 지난해 6월 터키 극우주의자로부터 테러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한국 언론만 초청해 이스탄불 자신의 아파트에서 기자회견을 연 일, 그리고 바쁜 일정을 쪼개 이번에 한국을 들른 것 모두 파무크 식의 보은인 셈이다(파무크는 방한 일정 마지막 날 거의 밤을 새워 신작 『순수박물관』의 ‘작가의 말’을 썼다).
아까 변방 얘기를 잠깐만 더 하자.

어쩌면 파무크의 노벨상 수상은 우리에게 불리한 소식일 수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을 학수고대하는 동쪽 변방의 민족에게 변방의 순번이 한 차례 지나갔음을 알리는 통보일 수 있어서다. 만약에 그렇다면 인연은 안타깝게도 악연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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