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조류 침투 유전자가 ‘재편성’된 구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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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 06면

전자현미경을 통해 본 조류 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 H5N1형의 모습(노란색).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16일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AI) 바이러스의 유전자형을 조사한 결과 2003, 2006년에 발생했던 것과는 다른 계열이라고 잠정 결론 지었다”고 밝혔다. 검역원의 이윤정 박사는 “중국(홍콩)·베트남에서 발견되긴 했지만 인체 감염을 일으킨 종류와는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 바이러스가 남쪽에서 온 철새에 의해 유입된 것으로 보고, 일본에서 올해 발생한 백조 폐사 사례의 바이러스를 비교하고 있다. 다음주 중 동일성 여부가 확인될 예정이다. 또 이번 바이러스의 인체 위험성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에 유전자형 분석을 의뢰해 놓은 상태다. 그 결과는 늦어도 이달 말께 나올 것으로 보인다.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정체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8개의 유전자(RNA) 조각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인간·동물의 세포에 침투하는 역할은 HA와 NA라는 2개의 표면항원이 담당한다. 두 유전자는 단백질 종류에 따라 각각 16종과 9종으로 나뉜다. 이들이 서로 어떻게 조합돼 있느냐에 따라 동물이나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조금씩 다르다.

사람에게는 H1N1·H1N2·H3N2형 등이, 조류에게는 H5N1·H7N7· H9N2형 등이 주로 해를 미친다. 1918년 전 세계에 유행해 수천 만 명의 희생자를 냈던 스페인독감이 H1N1형이었다. 하지만 1997년 홍콩에서 H5N1형이 18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이 같은 구분이 흔들렸다. 야생조류에게선 거의 증상이 없던 저병원성 H5N1형이 가금류와 돼지 등을 거치며 인간에게도 감염돼 치명상을 줄 수 있게 작은 변이를 일으킨 것이다. 서울대 수의학과 김재홍(조류질병학) 교수는 “환경적인 변화 등으로 인해 인간이 감염되는 AI가 출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2003년 네덜란드에서 수의사가 H7N7형에 감염돼 숨지기도 했다.

현재 가장 우려되는 AI는 H5N1형이지만 같은 H5N1형도 내부 유전자가 배열되는 형태에 따라 세부 ‘족보’가 나뉘고 이에 따라 인체 감염의 위험성도 차이 난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H5N1형의 경우 세부 족보에 따르면 ‘2.3.2’계열로, 베트남에서 106명의 감염자가 발생해 52명의 사망자를 낸 ‘1’계열이나 중국·라오스 등지에서 인체 감염을 일으킨 ‘2.3.4’계열과는 또 다르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2006년에 발생한 AI는 중국 칭하이에서 유래한 것(2.2)으로 이집트·터키 등에서 감염자가 발생했다. 즉 특정 유전자형이 주로 발견된 지역이 우리나라보다 남쪽이냐 북쪽이냐는 기후 적응력과는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인체 위험도와는 상관이 없다. 고려대 의대 천병철(예방의학) 교수는 “동남아시아는 사람과 가금류가 사는 곳이 거의 구분 없는 생활환경 때문에 희생자가 더 많았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다. 현재 인체 감염 사례가 없는 유전자형이라도 국내 가금류에 토착화될 경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구조적 특성상 언제 어떤 변이를 또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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