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소리가 묻는다 ‘진실은 무엇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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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 13면

연극 ‘나생문(羅生門)’
6월 29일(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평일 오후 8시, 주말·공휴일 오후 3시·6시(월 쉼) 문의 02-708-5001

무대에 등장인물 하나. 보고 겪은 것을 분에 겨워 읊조리는데, 딱딱, 나무봉 소리가 제지를 한다. 판소리 가락에 맞춘 고수의 추임새 같기도 하고, 얼굴 없는 변사의 해설 같기도 하다. 찰나의 장단이 암시하듯 이곳은 법정. 대낮 숲속의 살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자기 변론을 한다. 진실은 하나인데, 진술은 여럿. 기묘한 엇나감에 ‘쟁~’ 하니 불길한 음향이 울려퍼진다.

연극 ‘나생문’은 일본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羅生門)’이 원작이다. 영화가 일본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것인데 연극은 영화를 무대로 옮겼다. 무사·부인·산적·노승·나무꾼 등 등장인물도 같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플래시백 기법도 영화 그대로다.

한데 극을 쥐락펴락하며 무대에 입체감을 더한 또 다른 주인공이 있으니 ‘타악’이다. 첫 장면에서 우르르 울리는 천둥소리로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한 타악 소리는 멜로디 하나 없이 극에 운율을 입힌다. 평화로운 숲속의 오후, 거칠고 긴박한 겁탈의 순간, 진술에 따라 엇갈리는 결투 신까지 관객의 심장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압권은 무당의 원혼 굿. 원작의 배경이 일본임을 잊게 만드는 호쾌한 장단과 가락이 무대를 휘돌아 울린다.

2003년 이 작품으로 연출 데뷔를 한 구태환 연출은 “원초적 진실에 문제 제기를 하는 극의 묘미를 살리려 타악을 덧입혔다”고 설명했다. 출발은 전통 타악이었지만 올해 무대에선 퓨전이 가미됐다. 고석진 음악감독은 “선율이 없는 대신 타악에선 강약이 멜로디”라며 “극의 흐름에 녹아드는 악기 편성에 고심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북과 징 등 전통 악기에다 윈드벨·차임벨·심벌즈·스프링드럼, 그리고 봉고와 콩가 같은 삼바 악기까지 조화를 이뤘다.

“5년 전엔 형식적 완성도에 신경을 썼다면 지금은 작품이 말하는 주제에 더 포커스를 두고자 한다”고 구 연출은 말하지만, 영화와 다른 무대의 밀도를 느끼기에 지금도 손색없다. 뮤지컬 스타에서 연극으로 발걸음한 이건명과 그룹 god출신 데니안의 무사 연기를 대비해 보는 것도 색다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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