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헝가리·체코 "美 방산업체 나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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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유럽연합(EU) 가입을 한달여 앞두고 있는 중.동유럽 국가들에서 무기시장 판도가 바뀌고 있다고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가 24일 보도했다.

르 피가로는 1999년 폴란드.헝가리.체코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과 때를 맞춰 동구 시장에 진출했던 미국 방위산업체들이 배척당하고 유럽 기업들이 그 빈자리를 공략하고 있다고 전했다. 표면적으로는 미 방위산업체들이 약속했던 투자를 이행하지 않은 게 이유지만, EU 가입을 코앞에 둔 이들 국가가 나토의 군사동맹보다 EU의 정치동맹에 더 신경쓰고 있다는 속내도 읽혀진다.

◇미 방산업체들의 오판=미 방산업체들은 폴란드 등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나토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무기체계에 맞추기 위해 재래식 무기의 대규모 현대화 작업이 뒤따를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구소련의 위협이 사라진 이후, 동유럽 국가들은 과도한 군사력을 보유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5월 1일 EU에 가입할 예정인 이들은 EU 회원국에 걸맞은 경제 구조조정을 요구받았다. 따라서 방위비 예산부터 줄이기로 하고 보유 중인 재래식 무기를 개량해 쓰기로 했다. 결국 추가 수요는 미 기업들의 기대만큼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쫓겨나는 미 기업=동유럽 무기 시장의 매력이 떨어지자 미 방산업체들은 애초 약속했던 현지투자를 미뤘다. 이에 동유럽 국가들도 미 기업을 쫓아내거나 결정된 가격을 다시 깎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당시 폴란드는 영국 BAE 시스템과 스웨덴 사브 컨소시엄이 내놓은 자스-39 그리펜과 프랑스 다소항공의 미라주 2000-5를 외면하고 록히드 마틴을 선택해 이들 유럽국가와 정치적 긴장을 부르기도 했다.

폴란드 정부는 록히드 마틴이 향후 10년간 60억달러가 넘는 폴란드 투자를 약속해 미 기업을 택했다. 그러나 약속했던 투자는 지지부진해 결국 '가격 재협상론'이 불거지고 있다.

체코 정부도 지난달 13일 자국에 진출해 있는 미 보잉사에 모든 지분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통보했다. 보잉사는 체코 국립 항공제작사인 아에로 보도초디의 지분 35%를 보유 중인데, 이 회사에 약속한 자금 지원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게 체코 정부가 주장하는 퇴출 사유다.

◇틈새 메우는 유럽기업=BAE 시스템과 사브 컨소시엄은 지난해 이미 체코.헝가리에 자사의 자스-39 그리펜 전투기를 임대했다. 체코의 아에로 보도초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유럽의 다국적 방산업체 EADS도 최근 체코와 접촉을 시작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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