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달맞이고개 너머 바다 낙동강 호포 가는 길 진한 부산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최영철 지음, 산지니, 272쪽, 1만3000원

부산이란 도시는 어떤 이미지인가. 동네 친구와 편하게 소주 한 잔 걸친 뒤 삶의 고단함을 ‘탁’하고 털어버릴 수 있는 곳. 황량하게 내버려진 듯 가슴 아린 호포역, 낙동강변 구포둑 너머 찾아 오는 따스한 봄 햇살…. 부산은 이렇게 아날로그적이다. 겨울 내내 빨간 꽃을 피웠다가 봄이 되면 스러지는 아련한 동백꽃을 닮은 도시. 구슬픈 ‘해운대 엘레지’는 곧 부산의 촉감이다.

2000년 『일광욕하는 가구』로 제2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던 최영철 시인이 오랜만에 산문집을 냈다. 이번엔 진한 부산 이야기다. 일상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인생의 의미에 눈을 돌리기 시작할 중년. 작가는 45년 부산 살이에 더욱 의미를 두기 위해 재개발이 되면 두둑하게 돈을 벌 수 있었던 옛 집을 버리고 대신 수영성 성북길의 낡은 집으로 옮겼다. 통장 잔고보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단잠을 자고 난 뒤의 행복감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번화가인 서면 롯데백화점과 쥬디스태화 앞에 북적대는 젊은이들을 보며 1987년 6월 항쟁 당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숱한 청춘들을 떠올린다. 그 시절 서면 부산상고의 담벼락은 ‘세계에서 제일 긴 공중변소’라 불렸다던가. 해운대 달맞이고개 너머 바다, 호포 가는 길의 낙동강, 중장년층의 해방구 온천장은 영원한 ‘부산 로망’이다.

작가는 “이 책이 부산의 속살을 만져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부산에서 살다 떠난 분들에겐 아련한 향수를, 지금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내 고장의 참모습을 깨닫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김진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