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라의KISSABOOK] ‘오래된 친구’같은 책 하나만 있어도 행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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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독서는 소개팅과 비슷하다. 속을 알고 만날 수는 없다. 광고나 추천에 끌려 “그럼 어디 한 번?” 하고 펼치게 된다. 이렇게 반신반의로 만나 두 번 읽게 되는 책이 있다. 머잖아 헌책방으로 향하게 되는 운명일랑 너끈히 극복하고 책장 지킴이로 만수무강하는 책. 평생 첫 만남의 흥분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책.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웅진주니어)만큼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책도 드물 것이다. 앨리스를 모른다면 그야말로 이상한 나라의 외계인. 그런 앨리스가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 헬린 옥슨버리의 그림으로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을 싹 바꾸고 나타났다. 옛 친구와 다시 한 번 데이트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어른이 되면 그림과 색채가 리드하는 분위기에 둔감해지고 활자 속 스토리에만 관심을 쏟기 십상이다. 이번 기회에 존 테니얼 그림의 앨리스와 옥슨버리가 공들여 치장한 앨리스가 어떻게 다른 느낌을 주는지, 아이와 의견을 나누며 읽어보시길. 앨리스를 처음 만나는 아이라면 더욱 각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엔 초면이든 구면이든 예외 없이 앨리스에게 탄성을 발하리라. “어떤 그림, 어떤 번역으로든 매력 만점인 앨리스야, 나의 평생 친구가 되어줘!”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창가의 토토』(프로메테우스) 또한 언제 다시 읽어도 새록새록 사랑스러운 명작이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눈에 아른거리는 토토, 세월 지나 스토리가 희미해져도 또렷이 기억나는 도모에 학원.

어른들의 성화와 고정관념에 빼앗긴 아이들만의 시간을 오롯이 되찾아주는 그곳은 고정된 장소가 아니다. 질서와 권위, 모범과 규율에 멍든 동심을 해방시켜주는 파라다이스의 변형이다. 어른들로선 부럽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도 현실로 돌아오면 또 다시 아이들을 내 방식대로 옭죄는 건 대체 무슨 병증일까. 이 책이 교사와 학부모의 필독서이기도 한 이유를 곰곰이 되짚으며 읽어봐야 할 듯.

야메스 크뤼스의 『가재바위 등대의 요란한 손님들』(스콜라) 역시 시대를 초월해 읽는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몽롱한 이야기들. 책의 한 구절처럼,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가 뭐 그리 중요할까. 읽는 동안 행복하고, 달콤한 느낌과 생각이 고여 오래도록 단침 삼키게 된다면 그게 바로 내가 찾던 책일 테니까.

대상 독자는 평생 물리지 않는 저녁 밥상 같은 책 친구를 찾고 있는 10세 이상의 어린이와 단 한 권이라도 ‘찬찬히 제대로’ 읽기를 가르치고픈 엄마들.

임사라<동화작가> romans8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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