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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가 있는 아침 ] - '민들레꽃 필 무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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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소영(1957~) '민들레꽃 필 무렵' 전문

그 남자한테서

가을햇빛에 펄럭이는 삶은 기저귀 냄새가 났습니다

그 냄새에 코를 박고 오랜 시간 나는 행복했습니다



볼프강 라이프라는 독일 화가를 기억한다. 제1회 광주 비엔날레. 속도라는 테마가 붙은 전시장에 놓인 그의 작품은 전시의 테마와는 좀처럼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두 개의 생선상자를 붙여놓은 크기의 나무 상자에 노란 민들레 꽃가루를 수북이 쌓아놓은 것이 그의 작품이었다. 네 벽에는 그가 고향 마을의 초원에서 민들레 꽃가루를 채집하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그 채집은 3년, 4년, 5년 변함없이 지속되고…. 꽃가루들은 그가 이승에서 만난 지극히 고요한 속도, 꿈의 이름들이었다. 가을 햇빛에 펄럭이는 삶은 기저귀 냄새가 나는 사람…. 맑음과 연민이 결집된 아련한 생의 냄새 속에 한 송이 민들레꽃이 피어난다.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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