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서울시의 행정 편의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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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시가 백화점 등 대형 건물 진입 차량에 대해 혼잡통행료 징수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도심 교통 혼잡을 줄이기 위해 교통량을 과다하게 일으키는 시설의 출입 차량에 통행료를 물리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방안이 행정 편의주의의 결과물이고 행정권을 남용한 사례라고 본다. 시민·건물주의 반발도 문제려니와 이런 규제를 피하려는 갖가지 편법이 동원될 수도 있다.

문제의 핵심은 교통 혼잡을 빚는다고 특정 건물에 출입하는 차량에 별도의 혼잡통행료를 과연 징수할 수 있느냐는 원칙의 문제다. 서울 도심에 들어올 때 지금 1호·3호 터널에서 통행료를 받는다. 일종의 혼잡세다. 그러나 이를 특정 건물로 한정시킬 경우 왜 하필 그 건물만이냐는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오히려 주변 교통 혼잡을 방치하는 건물 업주에게 벌금을 물리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이런 식의 규제는 성공 가능성이 낮은 행정 편의 주의다.

서울의 도심 통행 차량 제한 대책은 부분적인 효과를 봤다. 혼잡통행료 징수, 교통유발부담금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다분히 주먹구구식이고 밀어붙이기식이다. 그 흔한 시뮬레이션 한 번 없었다. 정책 효과에 대한 과학적 분석도 충분치 않다고 한다. 서울시가 선정한 290개 대형 건물이 30%씩 출입 차량을 줄일 경우 15%가량의 교통량 감소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치 정도만 있을 뿐이다.

교통 몸살을 겪고 있는 선진국들도 혼잡통행료를 물리는 것에는 신중하다. 런던과 뉴욕, 싱가포르 정도만이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그것도 지금 시행하려는 것처럼 특정 건물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도심에 진입하는 모든 차량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법이란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건물 하나하나를 이런 식으로 분류한다면 그것 자체가 행정권한이 된다. 행정력으로 복잡한 사회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순진하면서 권위주의적이다. 서울시는 자동차 부제 운영이나 대중교통 이용에 시민들이 스스로 나서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우선 시행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