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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화유산을찾아서>30.지장十王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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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세이카도분코(靜嘉堂文庫)미술관은 도쿄의 부유층이 많이 살고있다는 세타가야(世田谷)구의 오카모도(岡本)에서도 한복판을 널따랗게 차지하고 있는 사설미술관이다.
정문에서 본관까지 걸어들어가는 5분쯤 되는 길 양 옆에는 아름드리 참나무가 울창하게 하늘을 찌르고 있다.이곳 미술관이 보통 이상의 연륜을 지녔음을 방문객들에게 은연중 알려준다.
의외지만 세이카도분코 미술관이 개관한 것은 1991년이다.
그러나 미술관 개관이 이곳의 모체가 된 재단법인 세이카도(靜嘉堂)가 세이카도분코 창설 100주년을 기념해 벌인 사업의 하나였던 것을 생각하면 세이카도분코 미술관이 단순한 신설미술관이아니라는 것을 쉽게 깨닫게 된다.
재단법인 세이카도는 미쓰비시(三菱)재벌 창업자의 동생이며 2대 사장을 지낸 이와사키 야노스케(岩崎彌之助.1851~1908)와 4대사장인 그의 장남 이와사키 고야타(岩崎小彌太.1879~1945) 부자가 2대에 걸쳐 수집한 전적과 고 미술품을 가지고 세운 문화재단이다.
이와사키 야노스케는 당시 동양의 정신을 문화를 통해 지켜야 한다는 일념에서 문화재수집에 착수했다.그것이 1892년이었다.
특히 그는 중국과 일본의 고서(古書)수집에 심취했고 그 열정은 아들 대에 고스란히 이어졌다.이들 부자가 수집한 중국과 일본의 도서는 모두 20만점을 넘는 방대한 양을 자랑하게 됐다.
또 이들이 수집한 문화재속에는 도서(圖書)이외에 미술품도 포함돼 그 수가 5,000여점을 넘었다.
현재 재단법인 세이카도가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미술품 가운데남송시대 마원(馬遠)이 그렸다는 『풍우산수도(風雨山水圖)』등 7점이 일본 국보로,그리고 송판(宋版)『이태백문집(李太白文集)』등 81점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돼있다.세이카도의 중국과 일본 전적은 1940년 재단이 설립되면서부터 일반에 공개돼 이 방면의 연구자료로 활용돼왔다.그러나 미술품은 1977년 분코 부설의 전시관이 마련되면서부터 비로소 일반에 공개됐다.
오늘 감상할 작품은『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돼있는데 역시 14,15년전에 비로소 일반에 그 존재가 알려진 고려불화 걸작이다.
지장보살은 원래 인도의 지신(地神)에서 유래한 보살이다.땅이만물을 키워내는 힘을 가진 것처럼 지장보살도 지옥에 빠진 중생을 소생시키는 위대한 힘을 가진 보살이다.
지장신앙은 신라시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고려시대에서는 아미타신앙과 함께 널리 유포되면서 지장보살 관련 불화가 많이 그려졌다. 이 『지장시왕도』는 지장보살이 그가 거느린 권속들과 함께그려져 어느 면에서는 「지장보살권속도(地藏菩薩眷屬圖)」란 이름이 오히려 가까워보일 정도다.이 그림에는 아래쪽 왼편부터 두루마리를 들고있는 명부사자(冥府使者),오른편에 2명의 명부판관(冥府判官),그 뒤로 염라대왕등 10명의 명부시왕이 늘어서 있다. 그 위쪽으로는 왼쪽과 오른쪽끝에 각각 2명의 사천왕(四天王)이 두광을 이고 그려져 있으며 그 안쪽에는 왼쪽 아래편에 범천(梵天),그 맞은편에 제석천(帝釋天)이 있다.
그리고 단정하게 앉아있는 지장보살의 가장 가까운 곳에는 무독귀왕(無毒鬼王)과 수행승같은 도명존자(道明尊子)가 서로 마주보는 모습으로 그려져있다.
이 『지장시왕도』의 구도는 흔히 종교화에서 중심도상을 강조하는 구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명부판관에서부터 시왕.범천,그리고 지장보살까지 도상의 크기가 점차 커지는 형태로 그려진 것이그것이다.
이는 보는 사람의 시선을 아래에서 위로,외곽에서 중심으로 이동시키며 자연스럽게 중심에 앉은 지장보살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또 지장보살의 두광과 함께 넓게 그려진 신광(身光)은 아래쪽에 있는 사천왕.범천.제석천.무독귀왕.도명존자들의 두광과 겹치면서 원속에 원이 겹치는 기하학적으로 잰듯한 오묘한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이같은 구도의 아름다움 외에 무엇보다 이 『지장시왕도』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은 금빛찬연한 색채의 향연이다.
고려불화에 사용된 물감의 상당부분은 아직까지 베일속에 있다.
그것은 광물성 안료의 일종이라고 추정되지만 현대물감으로 복제해본 고려불화에는 빛이 부서지는듯한 광채감은 나오지 않아 더욱 신비감을 더한다.
이 『지장시왕도』에서 풍기는 현란한 색채감은 불화가 그리고자했던 피안의 세계의 아름다움이 과연 이토록 황홀한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특히 명부사자나 판관,그리고 수행승모습의 도명존자 얼굴은 마치 초상화의 일부분처럼 보여 시간의 공백을 넘어 고려인들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한다.
동국대박물관 홍윤식(洪潤植)교수는 『부분적인 보수가 있지만 화려한 색채나 정밀성등 고려불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려불화 걸작중 하나』라고 평한다.
덧붙여 홍교수는 『이 「지장시왕도」의 존재는 지난 74년 나라 야마토분카칸(大和文華館)의 고려불화전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구도의 『지장시왕도』는 국내에도 한점이 전하고 있으며독일 베를린미술관에도 권속배치는 물론 표정까지 꼭같은 『지장시왕도』가 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음은 金銅半跏思惟像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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