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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여제 소렌스탐, 오초아 이긴 뒤 “시즌 끝나면 은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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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등 말곤 다른 것은 하고 싶지 않다. (게임에) 100% 전념할 수 없다면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독일 병정처럼 씩씩하게 걷던 코스에서의 모습처럼 은퇴 선언도 단호했다. 안니카 소렌스탐(38·스웨덴)이 14일(한국시간) 미국 LPGA 투어 사이베이스 클래식이 열리는 뉴저지주 클리프턴 어퍼 몬트클레어 골프장에서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의 마지막 게임은 12월 유럽 여자 투어 두바이 레이디스 마스터스가 된다. 타이거 우즈와 LPGA 투어 커미셔너 캐롤린 비벤스가 “놀랍고 안타깝다”고 했지만 소렌스탐은 “다시 돌아올 일은 절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왜 은퇴하나

소렌스탐은 2004년부터 은퇴하고 싶어했다. 떠돌이 투어 생활에 염증을 느꼈고, 정상이라는 칼날 위에 서 있는 외로움은 골프 여제를 짓눌렀다. 이날 소렌스탐은 “골프에 너무 많은 신경을 썼다. 잘 치는 것에 너무 많은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이혼하고 새로운 사랑에 빠졌던 2005년 후반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듬해 로레나 오초아에게 세계랭킹 1위 자리를 빼앗겼다. 지난해엔 부상까지 겹쳐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심각하게 은퇴를 고려했다.

그러나 일단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마음을 바꿨던 것 같다. 올해 소렌스탐은 개막전을 비롯해 벌써 3승을 거뒀다. 절치부심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중 12일 거둔 미켈롭 울트라 오픈 우승은 가장 빛나는 승리였다. 새로운 골프 여제인 오초아가 나온 대회에서의 첫 우승이었으며 2위에 7타 차, 코스 레코드에 5타가 앞섰다. “소렌스탐이 완전히 돌아왔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은퇴 발표를 했다. 소렌스탐은 “세계랭킹 1위를 탈환하기는 쉽지 않지만 나는 다시 최고 수준의 골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은퇴 발표 시기로는 가장 적절하다”고 말했다.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여자 선수 중 소렌스탐처럼 완벽한 게임을 한 선수는 없다. 2001년 스탠더드 핑 2라운드에서 59타를 쳐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60타의 벽을 깼다. 라운드 내내 페어웨이를 벗어난 샷은 단 하나였고 그린 적중률은 100%였다. 1m가 넘는 파 퍼팅도 없었다.

2003년에 남자 대회인 PGA 투어 메모리얼 대회에 나간 일도 스포츠사에 남을 사건이었다. 5오버파 96위로 컷 탈락했지만 전 세계의 기대와 시선, 각종 편견과 비아냥 속에서도 꿋꿋하게 샷을 날린 그의 용기는 격찬을 받았다. 남자 대회 참가를 계기로 소렌스탐의 경기력은 한 단계 높아졌고 그를 따라잡으려는 여자 투어의 수준도 업그레이드 됐다.

소렌스탐은 매홀 버디를 잡겠다는 ‘비전 54’의 신념을 따라갔다. 그것이 스웨덴에서 온 수줍음 많고 평범한 선수를 골프 여제로 만들었다. 여덟 차례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현재까지 메이저 대회 10승을 포함해, LPGA 투어 72승, 미국 외 투어 18승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장 이루고 싶다던 그랜드 슬램은 이미 실패했다. 또 LPGA 투어 최다승(88승)과 메이저 최다승(15승) 기록도 깰 수 없게 됐다.

◇은퇴 후엔

그는 PGA 투어 선수였던 제리 맥기의 아들이자 에이전트로 일했던 네 살 연하의 마이크와 내년 1월 재혼한다. 자신의 이름 ‘안니카’ 브랜드를 단 의류와 골프 아카데미, 코스 디자인, 피트니스와 요리, 자선 재단 등을 운영할 예정이다. 소렌스탐은 “골프 경기에서 떠나는 것이지 골프에서 떠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1994년 데뷔한 소렌스탐은 15시즌 동안 공식 상금으로만 2200만 달러(약 230억원)를 벌었다. 스폰서와 초청료 등을 합하면 50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번 것으로 추정된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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