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되풀이되는 과거사 합리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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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2일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일본총리의 모습을 본뜬 인형이 화형에 처해졌다.지난 5일 국회에서 무라야마 총리가 『한일합방은 적법하게 체결됐다』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바로 다음날인 13일 오전 일본 자민당의 내각부회(內閣部會:정무조사회의 핵심기관)에서는 정반대의 이유로 사회당소속 무라야마 총리에 대한 성토와 우려가 제기됐다.
일본정부가 12월8일 개최할 예정인 「전후 50년 기념집회」에 총리가 참석해 『2차대전은 침략전쟁이었다』는 「엉뚱한」 발언을 늘어놓을까봐서였다.회의에 참석한 자민당의원들은 『2차대전의 침략여부에 대해서는 일절 건드리지 않는 조건으 로 참석하게하자』『집회가 반성이니 사죄니 하는 사회당식 주장으로 채워지게방치해서는 안된다』고 강경하게 나왔다.과거사 인식에 대한 한일간의 골은 이만큼 깊다.우리나라에서는 화형식의 대상인 무라야먀총리가 일본정계의 주류세력 사이에 서는 특이한 인물로 여겨지는감마저 있다.
13일자 아사히(朝日)신문 사설은 최근 오사카 지방법원의 판결로 문제가 된 현행 원호법의 재일한국인 차별조항을 과감히 시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주장도 일본여론의 평균치와는 거리가 있다.한마디로 말해 「소수의견」인 것 이다.
무라야마 총리는 한일병탄 관련 발언이 문제되자 13일 오전 국회에서 조약체결 당시의 불평등성을 인정함으로써 파문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1948년의 대한민국 정부수립 때까지는 조약이 유효했다는 일본정부의 해석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사회당출신의 「이방인」총리로서는 의지가 있더라도 여기까지 손대기에는 한계가 있다.원호법문제도 일본정부는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법개정 아닌 다른 혜택으로 대신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되풀이되는 일본 조야의 과거사관련 망언에 대해서는 먼저 그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때마다 피해자인 아시아국가 및 민족들이 울분을 폭발시키는 대증(對症)요법은 한계가 있다.
병탄조약의 유효여부에 대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이중해석이 가능하게끔 애매하게 처리한 65년의 한일조약 문제를 포함해 원인치료에 주력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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