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참을 인(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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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결승 3번기 제3국>
○·박영훈 9단(1승1패) ●·이세돌 9단(1승1패)

제20보(212∼231)=이세돌 9단은 아침 일찍 나와 대국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대국이 임박하자 혼자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두 눈에서 특유의 강렬한 광채를 뿜어내며 어슬렁거릴 때는 사냥에 나선 작은 맹수와 같았고 눈을 감고 앉았을 때는 떠돌다 돌아온 방랑 검객을 연상케 했다. 그는 아마도 이때 눈을 감은 채 참을 인(忍)자 하나를 마음에 새기고 있었던 것 같다. 2국에서 상대의 도발을 응징하다 대마를 잡고도 망해버린 악몽을 떠올리며….

218에 패를 썼을 때 ‘참고도’ 흑1로 불청하는 것은 불가하다. 백2 때 3으로 중앙을 크게 잡을 수 있지만(약20집) 손해는 그 이상. 바둑은 바로 역전된다. 패는 백의 부담이 더 커보였지만 이세돌은 227로 순순히 물러서고 있다. 그는 오늘 마치 절에 간 색시처럼 시종 다소곳하다. 해설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전쟁이 틀림없다”고 말할 때도 그는 슬그머니 물러서곤 했다. 지금도 218이 반 집 손해수임을 고맙게 생각하며 골인 지점까지의 거리를 정확히 재고 용의주도한 계산가처럼 변화를 피해버렸다. 이건 ‘싸움꾼’ 이세돌의 새로운 모습이다.

겁낼 줄 모르면 고수가 아니다. 더구나 상대는 소신산(小神算) 박영훈 9단. 1집 반 앞서 있지만 공배를 메울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231로 마지막 패싸움이 시작됐다(217·220·223·226=패때림).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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