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생각은…

‘반 대기업 정서’에 막힌 중소기업 육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우리나라에서 종업원 5인 이상 299인 이하의 중소제조업은 국가 경제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사업체 수로 치면 전체의 99.4%, 종사자 수 75.7%, 부가가치 49.4%를 차지한다. 그러니 위정자들이 중소기업을 살리고 키우겠다고 야단이다. 사실 정부는 지난 30여 년간 내내 중소기업 육성을 부르짖었고 수많은 지원책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중소기업은 여전히 경제적 약자고 아직도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경쟁력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됐을까. 수없이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상당히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중소기업을 위한 ‘진짜 정책’이 나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보자. 고용 창출을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창업을 촉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창업 절차를 간소화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해 창업 비용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투자자는 안심하고 투자를 하고, 창업자는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미국에서 보편화돼 있는 임원선임권부주식(class voting)이 그런 장치다. 투자자에게는 투자 자금에 비례해 이익 회수를 보장해 주고, 창업자에게는 경영권을 보장해 주는 법률적 제도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제도를 갖고 있지 않다.

창업자로 하여금 창업 보람을 느끼게 하려면 경영권 승계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처럼 경영권을 물려주고 나면 ‘팽’당하는 기업문화 아래에선 원활한 경영권 승계가 불가능하다. 피땀 흘려 일궈 놓은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 주고 나서 오갈 데 없이 헤매는 창업자 이야기가 요즘 심심찮게 떠돈다. 이런 패륜을 막고 창업자의 경영 경험을 후계자가 이어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제도적 장치가 바로 중요한 업무에 대해 창업자에게 동의권을 주는, 황금주(golden stock)라고 하는 거부권부주식 제도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장치가 역시 없다.

우리나라는 또 중소기업에 패자부활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은행 대출을 받으려면 기업가의 개인 보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산하면 기업가는 완전히 재기 불능이 된다. 이를 방지하는 제도가 있다. 바로 일본의 회계 참여와 같은 제도다. 중소기업의 재무제표를 담보로 대출해 주는 시스템인데, 우리나라에는 없다.

최근 일본은 중소기업 정책을 완전히 개조했다. 실질적으로 중소기업을 중시하는 입법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회사법 제정을 통해 중소기업을 주식회사의 표준 모델로 하고 주식의 종류를 다양화했다. 그러고는 앞의 회계 참여제도나 신주 예약권 제도 등을 도입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되지 않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다. 외국에서는 중소기업을 위해 보편화된 이런 제도들이 우리나라에선 모조리 도입이 좌절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제도를 통해 대기업이 이득을 볼 것이라는 반기업 정서 때문이다. 반대론자들은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대기업들이 적대적 인수합병(M&A)의 방어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아예 논의조차 못하게 막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제도로서 효용이 인정되면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 예상되는 부작용은 별도의 다른 방법으로 최소화하는 게 맞다. 고용 창출이나 중소기업 육성에 직결될 수 있는 제도들이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못하고 폐기되는 작금의 현실은 비정상적이다. 하물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표방하는 현 정부에선 반드시 시정돼야 할 현실이다.

권종호 건국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