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Eye] 글로벌 수퍼클래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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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34면

오늘의 글로벌 시스템은 누가 움직이는가? 곧잘 미국과 유럽연합(EU), 아니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 같은 국제기구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도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미국은 글로벌 리더십을 잃었다. EU의 경제력은 막강하지만 글로벌 비전이 없는 브뤼셀의 전문관료집단(Eurocrats)에 끌려 다니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일본 등 주요국 대통령과 총리들의 국내 지지율은 하나같이 20~30%대로 추락해 나라 바깥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국제기구들은 글로벌 이슈 해결에 갈수록 무력하다. 글로벌시대를 관리할 ‘세계정부’는 고사하고 왕년의 미국을 대신할 글로벌 리더십도 안개 속이다. 세계는 날로 글로벌화하고 있지만 그를 관리할 ‘글로벌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는 부재한 상태다.

글로벌화는 경제 및 금융 분야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자본과 서비스가 국경을 무시로 넘나들어 개별 국가 정부의 통제 바깥이다. 세계 톱 50개 금융기관의 금융자산은 50조 달러로 세계 총자산의 3분의 1이다. 세계 톱 250개 기업의 매출액은 세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이다. 엑손과 월마트의 연간 매출은 세계 20대 부국을 제외한 여타 모든 나라들의 연간 GDP와 맞먹는다. 게다가 세계 상위 10% 부자들이 세계 전체 재산의 85%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비즈니스맨과 기술기업가들, 은행가와 헤지펀드 매니저, 사모투자가 등 소위 글로벌시장 큰손들이 글로벌 파워 엘리트로 급부상하고 있다. 소속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없고, 국경과 개별 국가 정부를 구시대의 잔재쯤으로 여기며 그들 위주의 글로벌 세계를 만들어가는 계층을 데이비드 로스코프(카네기평화재단 객원연구원)는 ‘수퍼클래스(Superclass)’로 부른다. 그 자신도 신흥시장의 투자와 리스크 관리에 관한 컨설팅회사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로스코프는 국가를 초월한 수퍼클래스를 구성하는 글로벌 파워엘리트들을 6000명 정도로 추산한다. 정부 수반과 교황 등 종교지도자, 루퍼트 머독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등 미디어 거인, 프로축구 첼시 구단주인 러시아 신흥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 심지어 알카에다·헤즈볼라 등 국제 네트워크를 가진 테러조직도 이들에 포함시킨다.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단골로 초청받는, 나라 없는 수퍼클래스가 글로벌시대의 새 리더십으로 떠오른다는 얘기다.

사실 세계 금융위기는 글로벌 금융 큰손들을 전화 화상회의에 불러 모으는 동원력 없이는 현실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어느 나라 정부가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하고 투자 유인책이 좋으냐에 따라 투자 대상국을 선별하고 그들에게 불리한 기존의 게임 룰을 바꾸도록 만든다. 미국이 교토 기후변화협약을 외면하는 배후에는 엑손 등 석유기업들의 반대 로비가 있다.

이들 수퍼클래스의 상승세는 눈부시다. 지난 2년 사이 중국에서만 억만장자(billionaire)가 100명이 나왔다. 세계 백만장자 1000만 명의 재산은 37조 달러로 지난 10년 사이 거의 배로 불었다. 다보스포럼을 본뜬 아시아 26개국 보아오 포럼의 도전도 눈길을 끈다.

문제는 수퍼클래스가 득세하면서 세계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는 점이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면서 성장의 혜택이 극소수에게 쏠리는 경향이다. 일등이 모두를 가져가고, 평균 근로자 1년치 연봉이 최고경영자 연봉의 단 10분치에 불과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가. 자신들의 장래에 관한 주요 결정들이 갈수록 국경을 초월한 힘에 좌우되는 판에 누가 대통령 후보가 되느냐를 놓고 국내 정치 공방에 매달려 있는 미국이 한심하다고 로스코프는 최근 개탄했다. 이것이 어찌 미국만의 일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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