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가로쓰기를 시작하는 중앙일보 사장에게 드리는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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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앙일보 홍석현사장님.
1995년10월9일 5백49돌 한글날을 맞이해 오랜 멍에를 서슴없이 벗어던지고 새로 「가로짜기 신문」으로 힘차게 탈바꿈하는 중앙일보사의 사장님과 사원 여러분께 깊은 경의와 함께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아울러 앞으로 이 나라 신문계 의 선구자로서 오래오래 크게 발전하기를 충심으로 바랍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신문은 치욕의 역사로 얼룩져 왔습니다.
처음 태어난 『한성순보』(漢城旬報.1883년10월31일 창간)나 두번째로 태어난 국한문 섞어쓰기의 『한성주보』(漢城周報.1886년1월25일 창간)가 다같이 이노우에 가쿠고 로(井上角五郎)라는 일본사람의 편집지도를 받았으며,주조에서 문선.조판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의 일본 기술자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 총독정치 35년동안에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그들에게 짓밟힐대로 짓밟혔으며,광복 후 60년대까지는 일본교육을 받은 신문인들 때문에,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는 그들의 뒤를 이은 신문인들 때문에 우리 신문은 탈바꿈하 지 못하고 일본 신문의 꼴을 그대로 따라왔습니다.이제 와서도 일본은 한국이그들의 글자살이와 똑같은 한문글자 섞어쓰기를 해주어야 한국의 인쇄(신문제작 자동고속화 장비포함)시장을 언제까지나 독점할 수있기 때문에 더욱이 이미 헌 것이 된 통신.인쇄장비를 쓰레기로버리지 않고 한국에 새 것으로 비싼 값에 팔아넘길 수 있기 때문에 일부 철없는 한국사람들의 이른바 「한자복권운동」을 보이게안보이게 끈질기게 도와주고 있습니다.오늘날까지 우리 신문의 꼴이 일본신문의 꼴 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만 봐도 누구나 다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때 중앙일보가 일본신문의 꼴과 똑같은 이제까지의 찌든굴레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새롭게 가로짜기 신문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신문계만이 아니라 우리 글자살이,나아가 우리 문화계에 새기운을 다시 살려주는 희망의 횃불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래서 뜨거운 박수와 함께 내일의 발전을 마음으로부터 빌어마지 않는 것입니다.건투를 빕니다.
〈한글문화단체 모두 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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