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영업이익 30% 줄 것” … 도요타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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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내가 젊은 사원 시절에는 연필이 짧아지면 그 몽당연필을 다른 연필과 고무줄로 묶어 끝까지 썼는데….”

8일 도쿄에서 결산발표회를 연 도요타자동차의 와타나베 가쓰아키(渡邊捷昭·67) 사장의 마무리 발언은 ‘절약 정신’으로 압축됐다. 사상 최대의 매출과 영업이익 실적을 발표한 신나는 자리였지만 그의 표정은 시종 굳어 있었다.

이날 동시에 발표한 올해의 예상 실적치가 영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엔고와 원자재가 상승, 미국 경기 하락이라는 ‘3중고(苦)’ 때문에 올해 매출은 4.9%, 영업이익은 29.5%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따라서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도요타식 경비 절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이날 와타나베 사장의 결론이었다. 도요타는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이른바 도요타 방식이라 불리는 ‘군더더기 걷어내기’를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와타나베 사장은 “사내 회의자료들이 언제부턴가 컬러가 많아졌다”며 “앞으로 내가 이것은(컬러 복사) 절대 못 쓰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기자회견 자료도 너무 화려하다”며 불필요한 작업을 대폭 줄이라고 지시했다. 와타나베 사장은 도요타의 발상지인 아이치(愛知)현 도요타시에서 태어나 64년 입사해 일선에서 산전수전을 겪어온, 말 그대로 도요타 맨이다. 조달 담당 부사장 시절에는 주요 173개 부품의 원가를 평균 30% 절감시켜 도요타 내부마저 깜짝 놀라게 만든 주인공이다.

그는 “도요타가 생산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10종이 넘고 연간 판매대수가 100만 대에 달한다. 그런데 차종별로 좌석 네 곳에 달린 손잡이가 모두 다르더라. 연구소와 협력업체가 공동연구에 나서 이를 하나로 통일했더니 손잡이 생산비를 60% 절감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경비·원가 절감의 가능성은 무한대’라는 말을 늘 강조한다. 2005년 사장에 취임한 이후에도 “불필요한 인건비가 든다”며 회사에서 지급하는 차량을 마다하고, 자신의 승용차인 렉서스를 손수 운전해 출근한다. 절약 정신이 몸에 밴 그의 눈에는 ‘실적이 좋아지면서 계속 회사가 확대되다 보니 조직 분위기가 느슨해졌다’고 비친 것이다.

와타나베 사장은 우선 부·차장 직급에 인정하던 신칸센(新幹線) 특실 이용을 금지했다. 이어 계열사인 도요타자동직기에 75개 항목의 경비 절감 세부 리스트를 정리하도록 했다. 출장 여비부터 사무용품, 소모품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절약하겠다는 것이다. 이 중에는 화장실 휴지 아끼기도 들어가 있다.

한편 도요타의 올해 실적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자 9일 도쿄 증시의 닛케이 평균주가는 전날보다 287.92엔(2.06%) 내린 13,655.34로 마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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