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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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캄캄한 밤이다.곧 새벽이 다가온다.새벽이 가까울수록 밤은 더욱 어둡기만 하다.상운은 어두운 풀 숲 속에 혼자 웅크리고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새벽이 다가오면 그 놈을 만나 조깅을하게 된다.그 놈 앞에서는 한껏 점잔을 피웠으나 속에 들끓는 이 분노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마음만 먹으면 단숨에라도 그 놈을 죽일 수 있었다.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다.상운은 철저하게 승리하기 전까지는 그 놈을 죽이지 않으리라 마음 먹고 있었다.그 놈의 최후 는 이미 작성한 계획안대로치밀하게 진행해야 한다.상운은 자기 속에서 떠오른 계획안을 곰곰이 궁리한 결과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 놈 스스로가 채영을 가장 잔인하게 찢어죽이고 깊은 죄책감에서 과거와 같은 메시아 망상으로 비약한 후 스스로 한적한 섬의 요양원을 찾아가 감금당한다.』 이 방법을 실천할 수 있는길은 하나밖에 없다.그 놈의 마음을 흔들어 의심과 적개심으로 가득차게 한 후 그 분노를 순간에 실천할 수 있게 부추기면 된다.상운은 오랜만에 만난 호적수 때문에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이제 권태는 씻 은 듯이 가셨다.상운은 그동안 자기의 권태의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상운의 권태는 더할 나위없는 그의성공과 부에 있었다.그리고 그 이면에는 사회에서 최고의 성공을거둔 자로서의 오만이 있었다.어느 누구와 싸워서도 져본 적이 없기에 더이상 사는 것이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원한다면 세계 최고의 부를 추구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의미가 없었다.내 일생에 다 쓰지도 못할 돈을 아득바득 버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없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또다른 승부,모험을 찾아나서야 하는데 지금의 상운에게 어울릴 만한 것이 없었다.돈으로 다 되는 것을부러 힘들게 모험하는 것들은 매력을 못주었다.그것은 마치 자연농원에서 놀이 기구를 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그래서 상운은현실을 위반한 탈법 속에서 스릴과 살 맛을 느꼈다.그런데 그것도 시들해질 즈음 정말 오랜만에 상대를 만난 것이다.감히 나의어깨에 깨진 병을 던지고 나의 고심한 창조적인 접근을 무력화시킨 놈! 동성애적인 접근을 눈썹 하나 까닥 안하고 받아넘기다니….상운은 민우를 만나고 난 후 잠을 이룰 수 없었다.패배를 당한게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쓰리고 아팠다.이 마음의 상처를달래기 위해 상운은 지금 풀 숲에서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정말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처럼 홀로 지나가는 여자가 있다면 강간,살인 ,시체모욕이라도 할 참이었다.그렇게 마음을 달래놔야차분하게 계획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지나가는 여자는 없었다.그리고 이제 날이 밝으면 상운은 다시 점잔을 빼며 그 놈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창조적인 접근을 해야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잠시의 휴식이 필요하다.상운은 할수 없이 풀 숲에서 나와 고속도로 휴게소로 향했다.꿩대신 닭이다.강간,살인을 못하면 사고라도 저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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