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白갈등에 사법정의도 함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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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여름 美애틀랜타에서는 이 지역 마약 세계의 두목격인 에릭 보제만에 대한 불법 마약거래 공판이 열리고 있었다.유죄를 받을 경우 종신형에 처해질 운명의 그가 흑인들이 중심이 된 배심원들에게 호소한 선처 이유는 간결했다.『흑인이니 잘 봐달라』는 것이 주내용이었다.결과는 무죄와 다름없는 평결 불능(hung jury).역시 흑인인 판사는 나중에 일부 배심원들에게 공정성이 의문시되는 결정이었다며 유감을 표했다.흑백간의 인종적 갈등이 사법적 정의를 함몰시키고 있는 단적인 예다.
제2,제3의 「보제만」 케이스는 곳곳에서 목격된다.3일 심슨의 무죄 평결에도 이같은 측면이 작용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흑인 주민의 비율이 유달리 높아 재판에서 배심원의 80%정도가 흑인으로 구성되게 마련인 뉴욕시의 브롱크스 지역에서 벌어지는 중범재판의 경우 무죄 평결률은 무려 47.6%로 美전체 평균 17%의 거의 세배에 육박한다.인종을 기준으로 치우치는 경향은 흑인만이 아니다.흑인을 구타하거나 심지어 살인한 백인 범죄자들에 대해 백인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터무니 없이 관대한 평결을 내리는 경우가 적지않다는 설명이다.
백인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장악하고 있는 현행 사법체제하에서 피해의식을 더 느끼는 쪽은 물론 흑인이다.최근 유에스에이 투데이와 CNN이 공동으로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 「현 사법체제가 인종적인 편견을 담고 있다」고 답한 흑인은 전체의 66%로 30%인 백인의 두배 이상이 돼 흑인들의 불만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달해있나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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