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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아이템] 크게, 좀 더 크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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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정말 엊그제 같은 1990년대의 가장 큰 트렌드는 뭐니뭐니해도 미니멀리즘이었습니다. 화려한 장식이나 복잡한 프린트 없이 절제된 실루엣으로 말하는 드레스, “깔끔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군더더기 없는 인테리어가 사랑을 받았죠. 허전함은 둘째치고 실루엣만을 너무 중요시한 나머지 드레스는 몸에 계속 거슬리고, 너무 깔끔을 떨다 보니 새로운 소품 하나 구입하면 둘 곳 없는 실내 인테리어가 그렇게 불편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정신 없었던 80년대 스타일에서 무조건 탈출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90년대를 강타했던 미니멀리즘에 또다시 무조건적으로 반항하고 싶어서인지 수없이 많은 밀레니엄 행사를 치른 뒤부터 지금까지는 맥시멀리즘(Maximalism)이 날이 갈수록 그 힘을 더하고 있습니다. 패션디자인이나 그래픽디자인은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에서 “좀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며 장식적이고 복잡한 디자인 요소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배치할 것인가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듯 보입니다.

독특한 형태감과 색감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루이뷔통과 가방디자인 공동작업으로 유명한)가 그렇고, 복잡하고 섹시한 일러스트레이션과 패션 디자인으로 알려진 영국의 줄리 버호벤이 그렇고, 의상을 캔버스 삼아 그림동화를 창작하는 듯한 디자인을 하는 독일 태생의 버나드 윌헴이 그렇습니다. 이들처럼 장식적인 디테일로 가득한 작품을 선보이는 아티스트나 디자이너의 작업에 우리는 점점 더 많은 호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양한 캐릭터의 많은 인물이 다양한 장소에서 복잡한 이야기들을 하고, 빠른 편집으로 무장한 요즘의 영화들만 봐도 맥시멀리즘의 흔적은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봄의 꽃무늬 프린트들도 맥시멀리즘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버나드 윌헴의 선글라스는 한 달 전에 산 뒤 아직 한 번도 써보지 않았지만 보고만 있어도 재미있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복잡하고 재미있는 디자인들이 나와서 우리의 눈과 손에 즐거운 자극을 선사할 것 같네요. 그 자극에 금세 익숙해져서 우리는 좀 더 심화된 맥시멀리즘을 기다리겠죠. 자, 그럼 디자이너들의 실험에 기꺼이 동참해서 미래를 즐길 준비가 되셨나요?

하상백(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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