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마을] 프로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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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경기가 한창인 프로야구. 다 먼 나라 얘기 같다면 아직 야구의 재미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다. 나도 한때는 그랬다. 규칙이 너무 복잡하고, 경기는 또 왜 그렇게 긴가 싶었다.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야구의 매력을 맛본 나는 여러 사람을 야구의 세계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야구 전도사’임을 자처하던 나도 어느 날 진정한 강적을 만났다.

때는 2006년 3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한창이었다. 학교에서 한국 대 미국 경기를 시청하기 위해 친구들과 컴퓨터 앞으로 모였다. 국가 대항전이다 보니 평소 프로야구를 즐겨 보지 않던 친구들도 관심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여기에 야구의 ‘야’자도 모르던 후배 하나도 있었는데 응원을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관전에 응했다. 너무 의욕이 앞섰을까. 그 후배가 처음 던진 질문은 이랬다.

“그런데, 야구는 전·후반 몇 분씩 해요?”

나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질문에 순간 당황했다. 후배의 황당한 질문으로 시작된 우리의 야구 관전은 험난했다. 모든 상황이 신기했던 후배는 말을 뗀 어린 아이처럼 궁금증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프로야구 해설집이라도 펴내는 듯한 기분으로 매 순간 하나하나 설명해 주어야 했다. ‘이런 식으로 프로야구 팬이 한 명 더 느는 거지 뭐…’라고 내심 뿌듯해하며 있는데, 후배는 갑자기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저 사람 신문 1면에 나겠다! 1루로 공을 던지다니, 바보 아니야?”

상황인즉, 한국 투수가 1루로 견제구를 던졌던 것이다. 비상사태다. 우리는 견제구를 설명하기 위해 진땀을 흘려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선 역사적인 순간이 왔다. 최희섭 선수가 스리런 홈런을 친 것이다. 환호성을 지르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우리에게 후배는 어김없이 물어왔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천천히 돌아요?”

“홈런이라는 건데~! 공이 담을 넘어가면 무조건 들어오는 거야~!”

“근데 왜 앞에 있던 사람들도 다 같이 들어와요?”

그때 흥분한 한 친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 앞 사람을 밟고 들어오냐!”

분위기는 순간 썰렁해졌고 후배도 한동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미국을 이기는 꿈 같은 경기 덕에 이내 우리는 한마음이 되어 대한민국을 외쳤다.  김상지 (29·대학원생·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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