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키 남자배우, 중국 곤극 여주인공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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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일본의 유명 가부키(歌舞伎) 배우가 중국식 전통 오페라의 일종인 곤극(昆劇)의 여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다. 가부키 배우가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 공연 장르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것은 처음으로 알려졌다.

특히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국가 원수로선 10년 만에 일본을 국빈 방문한 시점에 이 공연이 이뤄져 중·일 문화 교류의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인공은 반도 다마사부로(坂東玉三郞·60·사진). 그는 6일부터 열흘간 베이징(北京)의 후광후이관(湖廣會館) 무대에 오르는 곤극 ‘무단팅(牡丹亭:모란정)’에 여주인공 두리냥(杜麗娘)으로 출연하고 있다. 경극(京劇)뿐 아니라 곤극의 여주인공은 전통적으로 남자배우가 맡아왔고, 이는 일본 가부키도 마찬가지다.

이날 다마사부로는 분홍빛깔의 짙은 얼굴 화장을 하고 머리에 화려한 보석 장식물을 부착해 영락없는 무단팅의 여주인공 두리냥으로 변신했다. 그는 “22년전부터 중국의 전통극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 데 마침내 꿈을 이뤘다”며 감격해 했다. 특히 “중국 최고 경극 배우인 메이란팡(梅蘭芳) 선생이 생전에 공연했던 뜻 깊은 무대에 서게 돼 더 영광스럽다”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을 위해 다마사부로는 10년전 곤극에 처음 매료되는 계기를 만들어 줬던 중국 배우 장지칭(張繼靑)으로부터 특별 연기 지도를 받았다. 다마사부로는 “문학 작품을 무대 예술로 가장 훌륭하게 표현한 장르가 곤극”이라고 극찬했다.

다마사부로는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언어 장벽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중국 표준어인 베이징 말도 잘 못하는데 하물며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 방언으로 노래하는 곤극은 말할 것도 없었다”며 “녹음 자료를 토대로 일본 글자로 발음을 적어가며 모방하듯 연습했다”라고 말했다.

가부키 연기 기법을 이번 곤극 공연에 응용했는지에 대해 다마사부로는 “전적으로 곤극의 연기법을 따랐지만 혹시 가부키 연기와 비슷한 동작을 관객들이 발견했다면 내가 가부키 배우란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다마사부로는 “곤극의 또 다른 명작인 ‘장생전(長生殿)’을 가부키 형식의 ‘양귀비(楊貴妃)’로 각색한 작품을 조만간 무대에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곤극=중국 장쑤성 쿤산(昆山)과 쑤저우 일대에서 발생한 전통 연극 장르. 남성적인 소재를 주로 다루는 경극과 달리 여성적인 연애담과 서정적 음악이 특징이다.

◇가부키=일본 에도(江戶)시대에 태동해 4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일본의 대표적 민간 연극 장르. 여장을 한 남자 배우의 화려한 의상과 짙은 분장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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