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실내악이 흐르는 서울의 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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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즘에는 행정가인지 연주자인지 모를 정도라서…. 연습을 통 못해요….”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54)이 2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 무대에 올라 말문을 열었다. 목소리가 유난히 작고 부드러운 그는 연습이 부족하다는 말로 2008년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주최 서울문화재단) 개막 연주를 시작했다. 강동석은 이 축제의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모든 프로그램과 연주자 섭외 등을 담당하고 있다. 이 ‘겸손한 엄살’과는 달리 연주는 힘이 넘쳤다. 그의 바이올린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감정이 실려 있었고, 객석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나갔다. 이날 공연의 제목을 ‘젊음’으로 정한 의미가 객석에 전해졌다.

강동석은 주제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시벨리우스가 22세에 작곡한 4중주곡(바이올린·첼로·피아노·아코디언)의 악보를 구하기 위해 작곡가의 고향인 핀란드의 박물관에 직접 연락을 했다. 시벨리우스가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한 작품들은 현대 공연장의 중요한 레퍼토리지만 실내악 작품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4중주곡 또한 그랬다.

하지만 강동석은 한국의 음악계에서 3년 동안 힘겹게 자리 잡고 있는 실내악 축제에 의미를 더하기 위해 이 곡을 핀란드에서 공수해 왔다. 아코디언 연주자는 미국에서 데려왔다. 결국 시벨리우스 특유의 쓸쓸한 선율이 단순한 구조에 얹혀있는 곡이 한국에서 초연될 수 있었다.

또 로시니가 12세에 만든 곡, 멘델스존이 16세에 쓴 작품 등이 무대에 올랐다. 젊은 작곡가들의 혈기와 재치있는 아이디어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 구성은 쉽게 만날 수 없는 성찬이었다.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는 주제를 바꿔가며 12일 동안 계속된다. ‘황혼’‘신앙’‘사랑과 열정’‘유머’‘사랑과 죽음’ 등의 주제가 인생 전체에 걸쳐 있다. 개막 공연과 마찬가지로 테마에 걸맞은 곡들로 모든 음악회가 구성된다. 강동석은 이 축제에 대해 “같은 심장 박동을 느끼며 각각의 악기가 음을 합하는 실내악이 모두가 하나 되는 축제와 닮았다”고 말했다. 13일 폐막하는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는 강동석과 연주자들이 만드는 인생과 실내악의 파티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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