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엔 외국인 노동자의 한국어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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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외국인 노동자에게 영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여고생이 있다. 이화외고 3학년인 조영선(사진) 양.

조 양은 “외국어고를 다니는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봉사를 생각해 봤다”며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그들 나라의 말도 배우는 ‘언어 교류’가 가장 좋은 봉사”라고 말했다. 조양은 지난해 3월부터 꾸준히 해 오던 ‘한국어 강의’ 봉사의 공로로 7일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서울학생상을 받았다.

조 양은 연휴 때인 4일에도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에 있는 양곡천주교회로 ‘출강’을 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하는 ‘한국어 강의’를 위해서다. 이곳 성당에서 미사를 마친 필리핀 노동자 10여 명이 조 양의 학생들이다. 수업은 오후 4시30분부터 6시까지. 수업은 늘 “마간당 하폰 포 쿠무스타카요”라는 인사말로 시작한다. 필리핀 고유어인 타갈로그어로 “안녕하세요, 잘 지냈어요?”라는 뜻이다.

조 양은 “수업은 영어로 진행하지만 타갈로그어로 몇 마디씩 건네면 필리핀 인들과 쉽게 친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양은 조기 유학의 경험이 전혀 없으면서도 이화외고 입학 때 영어 특기자로 선발될 만큼 영어에 능숙하다. 다양한 국가의 말을 배우는 것을 좋아해 타갈로그어까지 익혀 가며 필리핀 노동자들과 유대감을 가지려 노력하는 것이다. 조 양이 이끌고 있는 이화외고의 외국인 노동자 교류 동아리에서는 매달 한 차례 이들에게 한국어 가요도 가르치는 등 문화 교류 행사도 열고 있다.

조 양이 한국어 수업에서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존댓말’ 사용법. 조 양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주로 ‘반말’을 들으며 일을 하는지 한국어 존대 표현에 익숙하지 않다”고 안타까워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때때로 ‘공장을 옮기고 싶다’ 든가 ‘임금을 올려 달라’는 말을 정중한 한국어 표현으로 바꿔 달라는 부탁을 해 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인 조 양은 시험 기간만 빼고는 매주 한국어 강의에 나설 생각이다. 조 양은 “학교 안에서 공부에만 매달려 지낼수록 배우는 것이 적어지는 것 같다”며 “봉사 활동 등으로 조금만 눈을 돌려 보면 더 크고 다양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돼 사고의 폭도 넓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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