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기자] 대만은 녹색파와 남색파 전쟁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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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이 총통선거이후 양쪽으로 갈렸다. 현 천쉬이볜(陳水扁) 총통을 지지하는 녹색진영과 2만9천여표차로 낙선한 롄잔(連戰) 야당 당수에 동조하는 남색진영이다.
선거후 야당측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선거불복을 선언한 가운데 천 총통은 선거재개표작업을 수용하면 이같은 분열사태를 수습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한번 갈린 대만 유권자들의 분열은 쉽사리 봉합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중앙디지털 센터 대학생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설동녕씨(건대 중문3, 대만연수중)가 현지에서 선거이후 대만의 혼란한 상황을 생생하게 보내왔다. <편집자 주>

3월 20일 8시 기다리던 타이완에서는 마침내 총통선거가 실시되었다. 전날 천 총통의 피격사건으로 다소 어수선하긴 했지만 투표는 별탈 없이 진행됐다. 누가 됐을까. 이국의 총통선거에 관심을 가진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도 대통령선거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지 않는가. 더구나 이번 대만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중국과의 양안관계가 험악해질지도 모른다는 현지 여론이 있어 대만국민들은 선거가 끝나면서 TV앞에 모여 전자개표상황을 지켜봤다.

대만 상황 [화보]

개표는 초반부터 박진감이 넘쳤다. 롄후보가 오후 7시를 넘기면서까지 3만여표 차로 앞서가더니 7시20여분이 지나자 천후보가 3만여표를 앞서갔다. 9시10분, 90%쯤 개표가 된 상황에서 천후보는 3만표차를 유지하고 있었고 표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1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야당 롄후보진영에서 긴급뉴스가 흘러나왔다.
“이번 선거에 승복할 수 없다.”

이번 투표가 불법타락선거였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재검표를 요구하고 나섰다. 기자의 질문에 롄후보는 “우리는 선거무효 소송을 걸 것이다”라며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 오후 10시 타이베이 총통부 부근에는 롄후보를 지지하는 수천명의 군중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손에는 “선거사기”라는 조그만 플랙카드를 들고 있었다.
다음날인 21일 새벽4시가 넘었지만 롄후보를 지지하는 ‘범남색진영’의 지지자들은 집회장소에서 떠날 줄 몰랐다. 총통부 앞에는 당장 육중한 바리케이드가 쳐지고 중무장한 경찰이 삼엄한 경계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또한 이날 오후에는 대만 중부지방에 있는 까오슝에서는 흥분한 시민들의 난동이 있기도 했다. 이에맞서 천후보를 지지했던 남색진영 시위자들까지 가세해 타에베이시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서울에서 월드컵 당시 모였던 인파를 방불케 했다.
이렇게 시위는 하루종일 계속됐다.

다음날 도하 신문은 롄후보가 선거결과에 불복하는 이유를 이렇게 보도했다.
첫째, 선거를 하루 앞두고 일어난 천 총통후보의 저격사건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조작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천후보의 부상은 가벼운 것으로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이었지만, 천후보는 이를 이용, 긴장감을 확대시키고 유권자들의 동정표를 얻으려 했다는 것이 녹색진영의 불만이다. 실제로 천후보가 병원으로 후송되었을 당시 병원 주변에는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거나 기도를 하며 그의 안위를 걱정했다.

야당측이 천후보 저격을 둘러싸고 조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복부에 길이 11 cm, 깊이 2cm 의 부상을 입은 천후보와 무릎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 뤼쇼리엔 부총통후보 모두 방탄복을 착용하고 있지 않았고, 차량 역시 방탄 설비가 되어있는 국가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개인 소유의 차량을 이용 거리 행진을 했다는 점이 의문이다. 또 천 후보는 총상을 입은 뒤 반경 3.5Km 내에 타이난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청공(成功)대학의 병원으로 후송되지 않고 천후보와 유대관계에 있는 쉬원롱(許文龍)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치메이(奇美) 병원으로 후송되었다는 점이다.

쉬원롱(許文龍)이라는 사람은 리덩훼이와도 친분이 있는 사람으로 타이난 지역의 재력가이다. 그는 병원 뿐만아니라 그 외 많은 분야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다 병원 측 의사의 발표가 천후보가 후송된지 3시간 이후에야 있었다는 점도 의문이다. 특히 후송된 지 1시간 후에 도착한 검찰 측의 병원 내 진입을 거부한 것도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둘째, 이번 선거에서는 종전과는 다르게 33만 표에 이르는 무효표가 있었다는 점이다. 타이완에서는 이렇게 많은 무효표가 있었던 전례가 없다. 3만여 표도 안되는 차이로 천후보가 승리를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33만 표에 이르는 무효표를 다시 검사하면 이보다 더 많은 유효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셋째, 타이완은 크게 북부와 남부로 표가 갈라진다. 북부는 주로 ‘범남색진영‘의 롄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고, 남부는 ‘범녹색진영’의 천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데 병역을 하고 있는 군인들 중에 남부 소재지인 사람들은 투표에 참가할 수 있었지만, 북부 소재지인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은 투표에 참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군 내에서는 물론 선거를 대비해 모두 잘 조율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점은 야당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밖에도 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지아이(嘉義) 지역에서는 눈이 나빠 앞을 잘 못 보는 할머니가 손녀와 같이 들어가 투표를 했고, 이러한 것을 아무도 금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여권은 모두가 선거에 패배한 야권의 억지주장이며 민주주의를 비키기 위해서도 선거결과를 번복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대신 천 총통은 23일 “득표차이가 적은 만큼 재검표는 가까운 시일내에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피격문제는 현재 경찰이 범인검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범인이 체포되면 밝혀질 문제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야권은 재검표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천 총통퇴진운동을 벌여나간다는 방침이어서 당분간 대만의 혼란은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정치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문화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인 쉬이링(25세)양은 “우리는 타이완을 독립된 하나의 국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는 반드시 민진당이 승리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녹색진영의 왕모(39세,직장인)씨는 “저격사건 등을 조작해 국민을 우롱하는 천쉐이비엔을 더 이상 지도자로 삼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의 정책도 신뢰할 수 없습니다. 과거 4년 간 그의 정책은 그야말로 오리무중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뚜렷한 정책의 길이 없이 갈망질팡한 정책으로 타이완의 경제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차라리 경험이 많은 리엔짠 후보가 총통을 맡는 게 더욱 낫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총통선거를 통해 나타난 대만의 이념적 분열은 한국의 보수와 진보만큼이나 골이 깊은 것으로 보이며 쉽사리 치유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타이베이=설동녕 대학생기자 snet21@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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