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보수든 진보든 '진짜'이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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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69년 '뉴스위크' 칼럼에 폴 새뮤얼슨은 30년 전의 토론회를 회고했다. 장소는 하버드대학 강당이었고, 주제는 당시의 대공황이었다. 뒷날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와실리 레온티에프의 사회 아래 56세의 조셉 슘페터 교수와 그의 조교를 지낸 29세의 폴 스위지 강사가 토론자로 나섰으니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한 무대였다. 청중석의 대학원생 새뮤얼슨은 슘페터를 '아서왕 이야기'에 나오는 예언자 "교활한 멀린(Merlin)"으로, 스위지를 고결한 기사 "젊은 갤러해드(Galahad)"로 비유했다. 은사보다 선배의 손을 들어준 셈인가.

*** 계급이나 黨보다 강한 市場

그 칼럼은 내용 못지않게 제목이 근사했다. '거인들(giants)이 지구와 하버드 교정을 걸었을 때'라니. 그 거인의 하나인 스위지가 지난 2월 27일 지구를 떠났다. 그의 생각은 좌경이고 그의 책은 불온했지만, 한때 우리는 그를 탐독했었다. 봉건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移行) 원인을 두고 그는 영국의 모리스 돕과 멋진 논쟁을 벌였다. 돕은 계급 모순을 들고 나오고, 스위지는 시장 관계를 내세웠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역행(逆行)을 놓고 그는 또 프랑스의 샤를 베틀레임과 한판을 겨뤘다. 스위지는 60년대 동유럽에 출현한 시장 관계의 범람을 사회주의 체제에의 치명적 위협으로 진단했으나, 베틀레임은 공산당의 정치적 의지가 확고하다면 시장 확대는 큰일이 아니라고 응수했다. 그 뒤에 전개된 세계화의 역사는 스위지의 통찰에 손을 들어주었다. 계급보다 강하고 공산당보다 강한 시장이었으니!

새뮤얼슨은 모교의 교수를 바랐으나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유대인이고, 노벨 경제학상이 생기기 전이었기 때문일까? 스위지도 꿈을 접어야 했다. 마르크스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슘페터는 자신의 자리를 내주려고 했지만 그것마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아카데미즘에 미련을 버린 스위지는 저널리즘으로 돌아 49년 '독립적 사회주의 잡지' '먼슬리 리뷰'를 만들었다. 매카시 반공 선풍 속에 사회주의를 내걸었으니 어찌 무사하겠는가. 불온 혐의를 받은 대학 강의록 제출을 거부한 죄로 법정에 소환되기도 했다. 그의 독립성 고집은 사회주의 종주국한테도 예외가 아니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에 대한 실망으로 마오(毛)의 사회주의로 기울었으나, 주자파(走資派)가 승리한 문혁(文革)의 결말에는 아주 비판적이었다.

스위지는 2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 제목은 흔히 불안.정체.위기.폭발.종말 등의 단어로 누벼졌다. 번영보다 번영의 종말을 강조함으로써 심화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에 경고를 발한 것이다. 66년 폴 바란과 공저한 '독점 자본'은 경쟁 자본주의 시대의 마르크스가 보지 못한 독점 현상을 다뤘다. 케인스의 유효 수요 이론을 읽은 스위지는 '과소 소비'를 만병의 근원으로 보았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구하려면 계속 써야 하는데,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으면서 오직 쓰기만 하는, 예컨대 판매 광고 같은 '낭비'야말로 위기의 구세주가 된다. 이런 자유 분방 때문에 그에게는 '레프트 케인지언'이란 별명이 따라다닌다. 우리 귀에는 다행이지만 그에게는 치욕이었다. 마르크스는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이기를 거부했지만 스위지는 끝까지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이시도르 스톤은 '한국 전쟁 비사'를 썼으나 어느 출판사도 이 '비애국적인' 원고를 받아주지 않았다. 내용에 감탄한 스위지는 자신이 책을 내기로 하고, 먼슬리 리뷰 프레스를 만들었다. 내가 님 웨일스와 김산의 '아리랑의 노래'를 구입한 것도 이 출판사였다.

*** 혁명 '공식' 뒤집은 사회주의자

스위지는 한국 전쟁을 기화로 미국 제국주의로 시야를 확대했다. 혁명은 선진국 아닌 제3세계에서, 노동자 계급 대신 실직자.유색인.지식인한테서, 경제적 토대의 성숙보다 정치적 결단으로 이루라는 그의 설교는 분명 전래의 '혁명 공식'에 대한 이단이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네오-마르크시스트'라는 별명이 또 붙는다. 이 글은 본지 3월 4일자 타계 기사와, 6일자 분수대를 잇는 '집체 창작'의 최종편이다. 스위지가 대체 뭐기에 이 야단이냐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소신 하나로 고집스레 버틴 94년의 생애가 탄핵과 촛불로 어지러운 우리 세태에서 몹시 부러웠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보수든 진보든 '진짜'이기를….

정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