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쇼이 발레단 봄날 '꿈의 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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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푸슈킨은 러시아 발레를 "정신으로 충만된 비행(飛行)"이라고 했다. 러시아에는 '노래는 국민의 마음, 춤은 국민의 성격'이란 말까지 있다. 러시아 무용수들에게 "꿈이 무엇인가"를 물어 보면 궁극적인 대답은 하나다. 바로 "볼쇼이 발레단의 단원이 되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발레단'으로 꼽히는 러시아의 볼쇼이 발레단이 중앙일보사 초청으로 오는 4월 21~2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백조의 호수' 를 공연한다. 1995년 이후 10년 만에 성사된 내한공연이다.

볼쇼이 발레단의 역사는 200년. 그러나 서구 사회에 알려진 것은 50년도 채 안된다. 동서 냉전 탓이다. 56년에서야 볼쇼이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영국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 처음 공연됐다. 당시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던 서구 무용계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꽉 찬 무대, 정교하면서도 강렬한 춤은 그들의 상식을 훌쩍 뛰어 넘었다.

줄리엣 역을 맡았던 '전설적인 발레리나'갈리나 울라노바(당시 46세)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든 단원들에게서 범접하기 어려운 볼쇼이의 기량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3년 뒤 미국으로 건너간 볼쇼이는 '또 한번의 경악'을 재연했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이젠 영국의 로열 발레, 미국의 뉴욕 시티 발레와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기량도 세계 최정상급으로 올라 섰다. 그러나 볼쇼이 발레단에는 여전히 '볼쇼이만의 매력'이 넘친다. 바로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64년, 서른일곱살에 볼쇼이 발레단의 수석 안무가이자 예술감독으로 발탁된 그리고로비치는 '볼쇼이의 미래'를 만들었다. 드라마를 기반으로 한 19세기 고전발레 작품들을 세련되게 현대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백조의 호수''스파르타쿠스''돌꽃''사랑의 전설'등 그의 안무작들은 이제 볼쇼이의 고정 레퍼토리로 자리잡았을 정도다.

내한 공연을 한달 가량 앞둔 그리고로비치는 "이번에 공연될 '백조의 호수'에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분위기를 바꾸는 일이었다"며 "다분히 동화적인 느낌에서 대단히 낭만적인 소설의 느낌으로 장르를 돌렸다"고 말했다.

그가 안무한 '백조의 호수'는 69년에 초연됐다. 이후 조금 더 정교하고, 조금 더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보완 작업이 이뤄졌다.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 '백조의 호수'에선 항상 결말이 화제다. 왕자가 악마를 물리치는 해피엔딩과 백조는 영원히 슬픔에 잠기는 비극적 결말, 두 가지 안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은 비극으로 끝난다. 그리고로비치의 비극판 '백조의 호수'가 국내에서 공연되긴 처음이다. 문의 02-751-9061, (www.balletbolshoi.com)

백성호 기자

*** '백조의 호수' 주요 배역

◇갈리나 스테파넨코(오데트-오닐역)

러시아의 공훈 예술가. 1990년 볼쇼이 발레단에 입단, 클래식 발레의 명인으로 불린다. 이번 공연에서 오데트(백조)와 오닐(흑조), 1인 2역을 맡았다.

◇블라디미르 네포로지니(왕자역)

91년 입단, 간판 무용수로 활약하고 있다. '지젤'의 알브레히트,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블루버드 등 클래식과 현대작품을 섭렵할 만큼 기량이 뛰어나다.

◇드미트리 볼로골로프제프(악마역)

러시아의 공훈 예술가. 92년 모스크바 국제발레경연대회에서 3등상 수상. 뛰어난 기량과 객석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로 '천재적인 악마'를 연기한다.

◇배주윤(나폴리 신부역)

96년에 입단한 볼쇼이 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 발레리나. 92년 서울예술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러시아로 건너가 볼쇼이 발레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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