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칼럼>관철동시대54.비운의 두 기사 장수영.윤성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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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93년 봄 서봉수9단은 잉창치(應昌期)배세계대회에서 우승했고이창호7단은 동양증권배세계대회를 2연패했다.한국바둑은 조훈현.
서봉수의 구세대와 유창혁.이창호의 신세대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문자 그대로 욱일승천하고 있었다.
국내기사들은 한편으로 환호하고 한편으로 절망했다.억대의 상금에 화려한 잔치는 연이어 열리는데 초대받는 주인공은 정해져 있었다.고비사막을 넘어 시베리아까지 후퇴했던 서봉수마저 다시 돌아와 「4인방」이 스크럼을 짜자 누구도 그 철벽을 돌파할 수 없었다. 그러나 두사람의 낯선 인물이 93년 봄 기적처럼 4인방의 스크럼을 뚫었다.
SBS연승전 결승에 올라 이창호와 우승을 놓고 쟁패한 장수영(張秀英)9단,그리고 패왕전 토너먼트에서 우승해 조훈현의 15년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신예 윤성현(尹盛鉉)3단이 그들이었다. 거대한 바위틈에서 문득 발견한 야생화처럼 그들의 모습은 청초하고 대견했다.
張9단은 당시 41세.유년기에 동갑내기 曺9단과 함께 동문수학했으나 일생을 조훈현.서봉수의 그늘에서 살았다.그것이 張9단에게 주어진 운명이었다.그는 평생 일곱번 정상에 도전했으나 모두 준우승으로 끝났다.승부사로서 장수영의 인생도 그렇게 저무는구나 싶을 때 그는 다시 나타났다.문자 그대로 7전8기였다.
패왕전 본선 토너먼트는 기묘한 진행을 보였다.서봉수가 이창호를 꺾고 김수장9단이 서봉수를 꺾었다.편하게 올라온 윤성현이 도전자결정전에서 김수장을 2대1로 꺾었다.
18세의 윤성현에게 행운이 따르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이 복받은 신예를 주목했다.왕년에 서봉수가 그랬듯이 청년들은 곧잘 의외의 사건을 만들어내는 법이니까.
장수영은 첫판에서 완패했으나 3월12일의 제2국에서 黑으로 반집승을 거뒀다.신산(神算)이창호를 상대로 반집을 이긴다는 건영광이요,기적이었다.뭔가 한가닥 서광이 장수영의 뒤편에서 빛나는듯 보였다.「평생2등」에서 벗어나 40대에 이 르러 온몸을 불사르듯 일어선 장수영의 의지에 하늘도 감복한 것일까.관철동 사람들은 TV대국은 속기니까 의외의 변수가 가능하다며 최종결승전인 제3국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하늘은 역시 무심했다.3월19일의 제3국에서 黑을 잡은 이창호는 거의 일방적으로 張9단을 밀어붙여 큰 차로 이겨버렸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윤성현도 조훈현과 도전5번기를 시작했다.조훈현은 이창호에겐 약하지만 다른 기사들,특히 신예강호들을 만나기만하면 어린애 팔목 비틀듯 간단히 승리하곤 했다.특히 패왕전은 曺9단이 15년째 타이틀을 유지해 세계신기록행진 을 펼치고 있는 독무대.
과연 曺9단은 1,2국을 가볍게 연승하며 2대0으로 앞서나갔다.그러나 3국에서 윤성현은 白을 쥐고 무려 7집반을 이겼다.
머지않아 「신4인방」의 우두머리로 불리게될 윤성현은 드디어 세계바둑계의 호랑이 조훈현을 잡았다.비록 한판이지만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제4국은 이창호가 장수영을 침몰시키던 바로 그날(3월19일)벌어졌다.이 대국에서 曺9단은 제3국의 분풀이라도 하듯 처음부터 몰아붙여 불과 90수만에 불계승.
승부세계는 역시 비정했고 감동적인 해프닝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바위틈에서 힘들게 피어난 두송이의 꽃은 조훈현.이창호의 억센 팔목에 힘없이 비틀려 버렸고 「4인방」은 다시 완강하게 스크럼을 짰다.밖으로는 「접근하면 발포한다」고 선 언해놓고 철조망 안에서 자기들끼리 전쟁을 계속했다.
다시 왕위전이 다가오고 있었다.랭킹1위 「왕위」를 거머쥐고 독야청청하는 유창혁6단.그를 향해 조훈현.이창호가 나란히 진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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