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문제아를 과학자로 키웠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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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개발한 대형 멀티 터치스크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제프 한.

대형 멀티 터치스크린을 개발해 타임지 선정 ‘2008년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힌 제프 한(32·한국명 재식·사진)씨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첼시 지역에 있는 그의 회사 ‘퍼셉티스 픽셀’을 찾았더니 직원 10명 가운데 영업담당 1명을 제외한 9명이 연구원이었다.

한씨를 3일(현지시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놀랍게도 그는 어려서 부모의 속을 어지간히 썩혔던 ‘문제아’였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그런 아이를 사립 영재학교로 옮겨주고, 사업을 위해 명문 코넬대를 그만두겠다는 아들의 결정을 존중해준 아버지가 있었다.

-사립 영재학교인 달튼 스쿨을 다녔는데.

“처음 지역공립학교에 들어간 나는 문제투성이 학생이었다. 1학년 때 6학년 시험을 통과했을 정도로 수학 분야에 재능을 보였지만 획일적인 수업 방식에 적응하지 못해 항상 딴 짓을 하는 바람에 학교를 여러 번 전학 다녀야 했다. 아버지는 초등 4학년부터 나를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있는 달튼 스쿨에 보냈다. 1919년 설립돼 전교생 1300명에게 영재교육을 하는 학교다.”

-코넬대를 중퇴했는데.

“달톤 스쿨에서 고교 과정까지 마친 뒤 코넬대에 입학해 전기공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대학 3학년 때인 96년 LA의 인터넷 업체로부터 동업자 제의를 받고 학업을 중단했다. 내가 가졌던 비디오 화상 기술을 바탕으로 이 회사는 처음 20여 명이던 직원이 몇 년 뒤 2000여 명으로 늘었을 정도로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인터넷 사업은 내가 꿈꾸던 분야가 아니었다. 그래서 6년 만에 그만 두고 뉴욕대(NYU) 연구원으로 옮겼고, LA에서 모은 자금으로 멀티 터치스크린 업체도 창업했다.”

-대학을 그만 두고 사업을 하겠다고 하자 부모님들이 반대하지 않았나.

“아버지는 ‘가족 모두 제프의 결정을 존중하고 믿고 있다’며 나를 격려해주셨다. 아버지는 69년에 유학 와 같은 유학생이던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셨다. 평소 ‘한 가지를 알면 두 가지를 알려고 노력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또 ‘무엇을 설명하려면 꼭 그림을 그려 설명하라’라고 충고하셨다. 이 말씀들은 멀티 터치스크린 개발에 큰 도움이 됐다. 20년 동안 델리(식료품점)를 운영하며 자식들을 키우다 6년 전 은퇴하셨다. 아버지는 유학 온 뒤 한 번도 한국에 가 보신 적이 없다. 한국에 직계가족은 없고, 서울과 부산에 사촌 형제들이 살고 있다.”

(그의 아버지 한동집씨는 부산 출신으로, 부산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강대에서 2학년을 마친 뒤 군대에 입대했다. 제대 뒤 미국 유학길에 올라 컬럼비아 대학과 퀸즈칼리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가족 관계는.

“밑으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하나씩 있다. 여동생 엘리자베스(30·한국명 민정)는 시카고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맨해튼에 있는 외국계 투자은행인 로열뱅크에서 근무하고 있다. 남동생 조니(26·한국명 재광)는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로 LA에서 살며 NBC 인기 프로그램 ‘히어로스(Heroes)’의 컴퓨터 그래픽팀 부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할리우드 유명 액션 영화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

-한인 사회의 관심이 크다.

“한국인은 자녀 교육이 가장 큰 일이다. 그러나 창의적인 교육이 아쉽다.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분야를 스스로 찾도록 도와주고 격려해주었으면 한다. 얼굴이 알려지고 난 뒤 청소년들이 ‘나도 이런 일을 하고 싶다’라며 e-메일을 보내온 적이 있다. 난 그들에게 무조건 수학을 열심히 하라고 조언했다. 과학 분야에 진출하려면 예술 공부도 필수적이다. 창의력을 겸비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결국, 유능한 과학자는 일반인과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획기적인 기술이라도 일반인이 이해하고 활용할 수 없다면 상용화·대중화가 불가능하다. 그건 좋은 과학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타임지 선정 100인에 뽑힌 소감은.

“전혀 몰랐다. 타임지에서 연구 성과와 사진을 요청해서 보냈을 뿐이어서, 나도 놀랐다.”

-사업과 뉴욕대 연구원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데.

“대학 연구소는 첨단 기술의 원천이다. 계속 연구하며 첨단기술을 접하고 싶다. 이 기회에 학업을 계속 하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학에 교수로 남을 계획이 아니라면 박사 학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뉴욕지사=신동찬·한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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