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신세대작가현지인터뷰>2.시마다 마사히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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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90년대 우리문학의 한 특징적 경향은 「카페문학」이라는 말로요약된다.카페는 음악과 소파와 편안한 조명이 있고 서로 모르는개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90년대 소설의 인물은 여기에 혼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타인과의 소통을 꿈꾼다.그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지배하는 것은열띤 정치적 토론도 심각한 철학적 대화도 아니다.그들은 좀더 깊숙한 내면으로 퇴행한 지점에서 만나기를 꿈꾼다 .그래서 서로의 취향을 확인하기 위한 대화를 끊임없이 주고 받는다.
비틀스의 『우주를 가로질러』가 새 울음소리가 있는 것과 없는것 두 종류가 있다는 사실이나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여러번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궁극적 목적은 문화적 취향의 닮은꼴을 찾자는 게 아니다.그들은 문화적 취향을 통해 감각의 동질성을 확인하려든다.때문에 정치이념도 그 자체만으로는 그들 서로를 강하게 결속시키지 못한다.체 게바라와 같은 혁명가도 그들 에게는 감각의친밀성을 나누는 문화적 기호에 불과하다.
시마다 마사히코(島田雅彦.34)의 소설은 이런 인물들을 극단화해 놓는다.데뷔작인 『부드러운 좌익을 위한 희유곡』(83년)의 지도리에서부터,『악마를 위하여』(86)의 아쿠마,『미확인 비행물체』(87)의 루치아노,『드림 메신저』(89 )의 매튜에이르기까지 모든 인물들이 개인적 소통을 방해하는 사회적 장치에도발적으로 반항한다.한마디로 이들은 「개인으로의 퇴행」을 이념으로 모든 사회적 틀에 대항해 싸우는 테러리스트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시마다 자신을 패러디화한 인물이다.시마다는 경제 성장기인 61년에 태어나 할리우드 문화의 세례를 받으며 자랐고 외국어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한 인물로 전통에 대한 부정정신이 강하다.그와의 인터뷰는 주로 국적성과 문화 적 다원주의에 초점이 맞춰졌다.
-당신 소설은 한국에서 크게 알려지진 않았다.자신의 문학을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작가들마다 무대가 되는 특정한 장소가 있는데 나는 그게 없다.내가 태어나 자란 도쿄의 교외는 택지조성이 한창이던 곳이었다.어느날 일어나 보면 언덕이 사라지는 일이 허다했다.그곳은 전통과 역사와 신화가 없는 그런 곳이었다.나는 이 곳이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상징적 공간처럼 느껴진다.신화가 없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롯데월드와 같은 환상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나는 소설을 쓴다.
-당신 세대는 다국적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말로 들린다.여기에 대해서는 무국적적이라는 비판도 있는데….
▲국적성이란 말 자체가 난센스다.나는 일본 작가지만 이 점을의식하고 글을 쓴 적이 한번도 없다.어디를 가나 내가 일본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일본어를 쓰고 있다는 한가지밖에 없다.
개인은 있는 장소에 따라 지위도 신분도 정체성도 변한다.나의 경우 일본에서는 12년 경력의 중견작가지만 한국에서는 신인이고프랑스에서는 무명의 한 일본인이다.특정한 범주안에 인간을 규정하는 것을 싫어한다.범주와 범주 사이에 머무르면서 경계를 허무는 일을 하고 싶다.
-소설 주인공이 하나같이 사회적 경계를 허무는 체제 전복적인인물이다.여기에 대해 미래에 대한 전망없이 행해지는 테러리즘이란 비판도 있는데….
▲내가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은 반(反)여론 형성이다.매스미디어의 여론은 일반인들에게 한 가지 생각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소설은 여론을 자극해서 획일성을 줄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현상을 뒤집거나 비틀어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 소설의 주인공을 정책입안자가 아닌 행동대원쯤으로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당신이 이 시대에 행동대원이 돼 테러를 가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
▲간단하게 말하면 국적.민족.성이다.나는 민족주의를 극히 특정한 한 시기에 유효할 수 있는 정치이념으로 본다.지금 민족주의를 고집한다면 그건 콤플렉스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성문제는 사회적으로 주입된 남녀의 구별이 문제가 많다는 입 장이다.작품에 동성애 이야기를 자주 거론하는 것도 남녀를 구별하는 기준에스며 있는 지배의 논리를 보여주기 위해서다.내가 꿈꾸는 것은 모든 인간과 문화가 수평적으로 소통되는 상태다.
-당신 소설은 성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성을 어떤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성을 단순히 섹스에 국한시키지 않고 개인이 소통하는 추상적인 범주로 생각한다.생물학적인 차이를 사회적인 차이로 치환해 놓은 전통적인 성관념은 다분히 정치적이다.나는 체질적으로남근 숭배자를 싫어한다.내 속에서 여성적인 면을 발견할 때도 있고 여성에게서 남성적인 면을 발견할 때도 있다.한국을 방문했을 때 시장에 간 적이 있다.거기처럼 좁은 장소에 여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본 적이 없다.나는 여자들에 둘러싸여 있는그런 장소를 좋아한다.
여자로 태 어나 성장했으면 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었을 것같다. -예술활동도 장르를 구별하지 않는 것으로 들었는데 소설외에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희곡을 두편 썼고 연극 연출도 했다.오페라를 좋아해서 출연한 적도 있다.지금은 2년뒤쯤 공연예정으로 오페라 연출을 준비중이다.그리고 무라카미 류가 연출한 영화『토파즈』에 출연한 적이 있다.혹시 볼 기회가 있으면 첫 장면에 나오는 남자를 유심히 보라(그는 무라카미의 영화는 예술성이 강하지만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는데 자신이 출연한 이 영화만은 92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도 타고 흥행에도 성공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시마다의 서구적인 마스크와 세련된 화술과 복장 은 첫눈에 영화배우같은 인상을 준다).
-일본에 와서 몇몇 문인들로부터 문학의 경향이 변화의 조짐을보이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자신의 경우는 어떤가.
▲20대에는 남들과 다른 전복적인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불탔다.무엇인가와 투쟁을 벌일 수 있다는게 20대의 특권이 아닌가.지금도 크게 변한 것은 없다.그러나 점점 사회적 책임이라는말이 가슴에 와닿는다.개인의 도덕과 사회적 전망 에 관심이 끌리고 있다.
-한국작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가.
▲김지하와 이문열이 인상적이었다.지식인의 치열한 자기 고백을담은 김지하의 『모로 누운 부처』는 감동적이었고 사회적 책임을상기시켜 주었다.
-한국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번역이 진행중인 『피안 선생』(92년)이다.일본인의 도덕교과서처럼 돼 있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마음』을 「몸」으로 패러디해 본 것이다.백인여자와 사랑에 빠진 한 아시아 남자의 성적 콤플렉스를 추적한 작품이다.
시마다는 인터뷰가 끝난 뒤 자신의 취미는 술집순례인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그가 안내한 곳은 작가와 잡지 편집자들이 자주오는 조그만 카페였다.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페미니스트이며 여자들과 대화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요 리를 배웠다고 말했다.세련된 화술과 미국식 제스처를 섞어가며 구사하는 수준급의 영어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피안 선생』의 작품내용과 관련해 동석한시마다의 한 여자동료가 인상깊은 지적을 했다.그녀는 일본인 여자와 흑인남자의 결혼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를 성적인 능력으로 보는 시각을 비판했다.일본인 여자와 흑인남자의 결혼은 거의가 지식인들끼리이며 이들을 맺어준 것은 성이 아니라 소수파끼리의 정서적 연대감이라는 것이 그녀의 해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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