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눈>한국의 "아비뇽"市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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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프랑스 남서부의 작은 도시 아비뇽은 세계 연극의 메카다.매년여름이면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연극인과 관광객이 몰려들어 이 유서깊은 도시는 온통 축제분위기에 휩싸인다.
아비뇽은 반세기전 연극제가 창설되기까지만 해도 소박한 관광도시에 지나지않았다.14세기 교황이 거주했던 옛성을 중심으로 한여러 중세유적 정도가 「관광상품」이었다.
그러나 지난 1947년 연출가 장 빌라가 이곳에 연극제를 창설하면서 아비뇽은 새로운 국제문화도시로 탈바꿈했다.장 빌라는 파리중심의 정통적인 연극에서 탈피해 실험적 연극으로 세계의 연극인들을 끌어들였다.
연극제 기간동안은 그야말로 아비뇽시 전체가 연극무대가 된다.
정규공연장이 별로 없어 교황청 뜰을 비롯한 체육관과 학교강당,그리고 거리의 노천극장등이 공연장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거리곳곳에선 갖가지 크고 작은 퍼포먼스들이 펼쳐져 도시 전체가 축제열기로 달아오른다.
아비뇽연극제는 올해의 경우 공식(IN)참가작품만 40여편,비공식(OFF)참가작품은 3백여편에 이르렀다.그러나 매표수입은 연극제 전체예산의 35%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정부와 시의 지원으로 충당된다.
아비뇽이 세계 연극의 메카라면 베네치아(이탈리아).카셀(독일).상 파울루(브라질)는 「미술」,베네치아.칸(프랑스).로카르노(스위스)는 「영화」,바이로이트(독일).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아스펜(미국)등은 「음악」의 성지(聖地)로 손 꼽힌다.
대부분 인구 10만명을 넘지않는 이들 소도시가 「국제도시」로떠오른 원동력은 바로 「문화예술」이다.
이들 도시는 대부분 자연경관이 빼어나 피서.휴양지로 이용되거나 역사적 유적들로 관광객을 끌어들였던 곳들이다.이같은 도시들이 저마다 개성있는 문화행사를 개발.육성함으로써 국제적 문화도시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도 바 야흐로 「아비뇽」이 움트고있다.
「호반의 도시」춘천은 최근 국제인형극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다.올해 7회째를 맞은 「춘천인형극제」는 제2회때부터 5~6개국의 외국극단들을 초청,점차 국제적 행사로 발돋움해 이제는 「춘천=인형극」의 이미지를 심는데 성공했다.인형극제가 열리는 8월이면 춘천시내는 축제분위기가 넘친다.춘천도 아비뇽처럼 정규공연장외에 어린이회관.적십자회관.공지천 야외무대등에서 공연이 펼쳐지며 거리에서 사물놀이.농악.브라스밴드등의 시가(市街)퍼레이드가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요즘 『경계를 넘어』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는 제1회 광주비엔날레 역시 예향(藝鄕)광주를 국제미술,특히 설치미술의 중심지로부상시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광주는 이에앞서 지난 7월 「제1회 광주국제발레콩쿠르」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국제적 문화도시의 면모를 갖춰나가고 있다.
이밖에도 오는 97년 한국연극협회가 추진중인 국제연극축제의 개최지를 놓고 가평.용인.수원등 경기도내 작은 도시들이 벌써부터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인다는 소식도 들린다.서귀포시에선 내년에 아시아.태평양영화제를 유치할 예정이다.바야흐로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각 지방도시들이 국제문화행사를 통한 국제도시로의 비약을 시작한 것이다.
지방도시들이 저마다 특색있는 국제문화행사의 유치를 통해 지방화와 국제화를 연계시킴으로써 지역의 성장을 꾀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한국문화의 성장을 불러오는 것이다.그러기 위해선 이들 지방도시의 국제문화행사 유치를 지방정부나 민간단체에 만 맡겨놓을것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적극 후원하고 나서야 함은 당연하다.
「광주비엔날레」「춘천인형극제」「국제영화제」「음악페스티벌」….
이 얼마나 근사한 이름들인가.
〈대중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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