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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시대의 권위주의 메드베데프가 끝낼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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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16면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3월 크렘린에서 메드베데프 당시 부총리와 다정스러운 표정으로 얘기하고 있다. 모스크바 로이터=연합뉴스

“When the sun goes to bed(태양이 지면)
That’s the time you raise your head
(머리 들어 일어나야 할 때)
That’s your lot in life Lalena
(그게 네 숙명이야 랄레나)
Can’t blame you Lalena
(널 비난할 순 없어 랄레나)”

최근 러시아의 한 언론인이 모스크바 서쪽 교외에 있는 관저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당선인과 인터뷰하는 동안 30년이 지난 레코드 판에서 흘러나온 노래다. 매춘부의 애환을 다룬 1970년대 영국의 전설적 록 밴드 딥 퍼플(Deep Purple)의 히트곡 랄레나(Lalena)였다. 하몬드 오르간 사운드에 얹힌 보컬의 덤덤한 목소리가 일품인 노래다. 메드베데프는 요즘도 이 노래를 즐겨 듣는다. 중학교 시절부터 서구의 록 음악에 빠졌던 변호사 출신의 메드베데프. 사람들은 그에게서 푸틴의 권위주의와는 다른 자유주의적 통치자를 기대하고 있다.

푸틴과 메드베데프의 성향과 경력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인 푸틴에게선 권위주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반면 교수·변호사 출신의 메드베데프에게선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가난한 공장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스파이 영화를 좋아한 푸틴이 고등학생 때 스스로 찾아간 KGB에서 출세의 기반을 다졌다면 인텔리 집안에서 자라나 하드록에 심취했던 메드베데프는 법률 전문가로 경력을 다졌다.

유도 같은 격투기를 좋아하는 푸틴은 지금도 시간이 나면 혼자 도장을 찾는다. 그러나 메드베데프는 부인과 함께 요가를 즐긴다. 메드베데프의 통치 스타일이 푸틴과 다를 것이란 예측을 낳는 대목들이다. 메드베데프는 1965년 9월 14일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아나톨리는 기술대학에서, 어머니 율리야는 사범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어린 시절 디마(드미트리의 애칭)는 싸움도, 욕도 할 줄 모르는 모범생이었다. 학교 성적은 ‘수’ 아니면 ‘우’였다.

그의 첫 담임선생인 베라 스미르노바는 “그는 항상 공부만 했다. 아이들과 길거리에서 노는 걸 거의 볼 수 없었다. 마치 애늙은이 같았다”고 회상한다.
메드베데프는 브레즈네프 통치 기간인 중학 시절부터 록 음악에 빠졌다. 서양 록 음악이 퇴폐적 부르주아 문화로 낙인찍혀 금지되던 시절이었다. 70년대 3대 하드록 밴드로 불린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레드 제플린(Led Zepplin), 딥 퍼플 등 영국 록 그룹의 음반을 모조리 녹음해 들었다. 그는 사석에서 70년대 나온 딥 퍼플의 음반 원판을 모두 소장하고 있다고 자랑하곤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메드베데프는 레닌그라드대 법학부에 들어갔다. 푸틴이 12년 전 졸업한 학부였다. 두 사람을 모두 가르쳤던 지도교수 발레리 무신은 “디마는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지도력과 열성이 돋보였다”고 기억한다. 메드베데프는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90년 ‘국영기업의 민사적 권리의 실현 문제’란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곤 9년 동안 모교에서 민법을 가르쳤다.

자본주의 바람을 타고 사업에도 손댔다. 93년 친구들과 함께 설립한 제지펄프회사 ‘일림 팔프 엔테르프라이스’는 지금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이 됐다. 그는 러시아 내 외국기업(특히 미국 기업)과 외국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기업들에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법률회사와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정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대학 시절 스승이면서 초대 페테르부르크 민선 시장이 된 아나톨리 소브착 밑에서 일하면서부터다. 시정부 대외관계위원회에서 법률 전문가로 활동하며 위원장인 푸틴과 알게 됐다. 이후 두 사람의 ‘보좌하고 끌어주는’ 인연이 시작됐다. 96년 소브착이 재선에 실패한 뒤 모스크바로 먼저 올라가 총리에 오른 푸틴은 옛 부하 직원인 메드베데프를 내각 행정실 부실장으로 불러들였다. 이후 메드베데프는 푸틴을 측근에서 보좌하며 대통령 행정실 부실장, 행정실장, 제1부총리로 거듭 승진했다. 러시아 최대 국영 가스기업인 가스프롬 회장에도 취임했다.

푸틴은 마침내 지난해 12월 국방장관 출신의 세르게이 이바노프 제1부총리를 대선 후보로 밀던 ‘실로비키’(정보기관·군·검찰 출신)의 강한 반발을 물리치고 메드베데프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푸틴의 전폭적 후원을 등에 업은 그는 3월 대선에서 70%가 넘는 지지율로 당선됐다.

메드베데프는 지금까지 자유와 정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그는 3월 말 대선 승리 후 처음으로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와 인터뷰한 자리에서 “자유는 통제보다 낫고 이 원칙은 어느 사회나 정치제도를 막론하고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의 지배를 정착시키기 위해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법에 의해 사유재산권과 정치적 자유가 확실히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푸틴 시대엔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었다. 일각에선 “메드베데프가 취임 1~2년 뒤 권력기반을 다지면 자기 색깔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한다.

그는 대선 유세 기간인 2월 시베리아 경제포럼에 참석해선 “경제 분야에서 국가 간섭을 줄이고 상당 부분을 민간에 넘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정책을 밀어붙인 푸틴과 달리 민간 기업과 시장의 역할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메드베데프가 집권 이후 당장 푸틴 시대의 틀을 벗어나 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란 게 대다수 전문가의 관측이다. 설사 그가 자유주의적 개혁을 꾀해도 푸틴 중심으로 짜인 권력 구도가 허용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총리로 자리를 옮겨 앉을 푸틴이 한동안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것이고, 푸틴의 권위주의적 통치 이념을 떠받쳐온 실로비키 중심의 강경파가 정치 요직을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

메드베데프의 정치적 색깔도 아직 불분명하다. 일부 전문가는 개인적 성향과 관계없이 그가 푸틴의 강한 러시아, 국익우선주의, 민족주의 노선을 그대로 이어갈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모스크바 카네기센터의 마샤 리프만 연구원은 “메드베데프는 대통령 행정실에서 최고위직을 지냈다. 푸틴의 정책은 곧 그의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러시아의 국익과 관련된 외교·국방 분야에선 강경 자세를 유지할 것이란 예측이 많다. 푸틴은 3월 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회담한 뒤 “메드베데프는 나 못지않은 민족주의자로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지켜 나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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