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극장의 꽃, 샹들리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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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13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2001년 12월 서울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랐을 때 화제를 모은 것은 무게 250㎏짜리 대형 샹들리에였다.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극중에서 유령이 천장에서 바닥으로 떨어뜨린 것으로 나오는 이 대형 소품은 파리 팔레 가르니에의 천장에 달려 있는 7t짜리 크리스털 샹들리에를 재현한 것이다. 1896년 파리 오페라에서 샹들리에가 떨어져 여성 관객 한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가스통 르루가 여기에 힌트를 얻어 추리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쓴 것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의 무대이야기

제작비는 금화 3만 프랑. 요즘 시세로 치면 5억원쯤 된다.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는 샹들리에 디자인에 많은 신경을 썼다. 영롱한 불빛을 내며 극장 안을 환하게 밝혀 주는 샹들리에 없이는 극장이 완성될 수 없다고 믿었다. 시인 보들레르는 극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볼거리로 샹들리에를 꼽았다. 하지만 샹들리에 때문에 4층 발코니석에서는 무대가 잘 보이지 않았고 천장 벽화도 일부 가려졌다.

가끔씩 발생하는 추락사고 때문에 1층 중앙에 앉은 관객들은 공연 내내 불안에 떨기도 했다. 샹들리에를 철거하고 천장 조명으로 대체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결국 무산됐다. 오페라 극장은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크리스털 샹들리에의 이름은 ‘폭발하는 별들’. 나치 독일에서 해방시켜 준 미국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오스트리아 정부가 기증한 것이다. 막이 오르기 직전 불이 꺼지면서 마치 우주선처럼 천장으로 올라간다. 꼭대기 발코니석에 앉은 관객의 시야를 가리지 않기 위해서다.

올 4월 개관한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의 샹들리에는 무게 8.5t에 지름 7m의 원형이다. 발광다이오드(LED) 방식으로 5800개의 크리스털이 빛난다. 1층 객석 바닥에서 16m 높이에 달려 있지만 필요에 따라 아래위로 움직일 수 있다. 워싱턴 케네디 센터에는 오페라극장뿐 아니라 콘서트홀에도 샹들리에가 있다. 각각 오스트리아와 노르웨이 정부가 선물했다.

샹들리에는 단순한 조명기구나 장식품이 아니다. 허공에 달려 객석 구석구석에 오페라 가수의 노래를 전달해 주는 확산체(擴散體)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음향 장치다. 19세기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는 샹들리에 아래쪽에 자리 잡은 박수부대를 ‘빛의 용사들’이라고 불렀다. 공연 내내 샹들리에가 환하게 켜져 있어 서로 신호를 주고받기가 쉬운 데다 박수 소리도 잘 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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