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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럼>보수의 정체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誌는 몇달전 전국적으로 미국의 유권자 성향을 분석한 뒤 미국의 정치가 중심을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전통적으로 공화당과 민주당 양대 정당의 바탕을 이뤘던 보수 우익과 진보적 좌파는 모두 합쳐 겨우 30% 정도밖에 되질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렇다고 다른 지도적인 정치이념이 등장한 것도 아니다.그것이 미국을 분열시키고 정치의 중심 부재(不在)를 낳은 원인이라고 한다.
아마도 그것은 공산체제의 몰락 이후 생겨난 이념의 공백상태에서 빚어지는 혼란일 수도 있고 급격히변화하는 기술사회 속의 어지럼증일 수도 있다.아니면 세기말에 나타나는 정신적 해체의 징후(徵候)인지도 모른다.그런 증세들은 일본이나 또 는 다른 유럽국가에서도 목격되고 있다.거기에 비하면 우리의 정치는 너무나「안정적」이다.3金정치가 솥발처럼 끄떡없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것을 보수적인 중산층이 떠받치고 있는 것으로 흔히들 주장되고 있다.
물론 각종 여론조사들을 보면 우리에게도 해체의 징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은 항상 절반 이상이 된다.3金에 대한 신뢰도는 대단히 낮다.현 정치지도자들에 대한불신은 거의 극한에 달한 느낌이다.그런데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어떤 노력도 호응을 받아본 적이 없다.88년 선거에서 중도좌파적인 한겨레당이 전국적으로 2%를 넘지 못하는 득표로 무너졌고,91년 지방의회선거때 중도적이던 시민의 모임이 거의 당선자를못내며 좌절했었다.
지금도 새로운 정치의 변화를 시도하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 전망은 대단히 불투명하다.현재의 정치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내는 유권자들이 실제의 투표행위를 다르게 하는 이중성(二重性)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이런 정치적 특성을 정치인들은 간단하게 「보수적」이라고 규정해 버린다.그래서 요즘 각 정당은 모두들 보수를 자칭한다.제도권에 진입한 진보파들조차 표를 얻기 위한 전술적 목표 때문인지 모두 보수적인 척 한다.마치 청계천 의 집단시장처럼 갑자기 모두 보수 간판을 내걸었다.
그러면 3金은 모두 한가지 보수인가.보수 본류를 자처하는 자민련만이 보수인가.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옹호하고 나선 국민회의가 새로운 보수인가.민자당은 그러면 어떤 보수고 또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의 5,6共 군부정권과는 어떻게 맥이 닿는 것일까.
아마도 우리의 보수를 굳이 나눈다면 전제적(專制的)보수와 기회주의적 보수,그리고 진보적 보수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거기에 보수를 가장하는 위장(僞裝)보수도 있을 법하다.
또는 그것을 부패한 보수와 개혁적 보수로 구분할 수 도 있을것이다.전제적 보수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군부정권의 무리다.그리고 거기에 붙어 정권을 보위하는 역할을 했던 지식인.율사.관료.기업인들이 기회주의적 보수일 것이다.그들은 부패한 보수며,타락한 보수다.그런 것들을 고치고 개 혁해야 한다는 것이 아마도 중산층의 보수의식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뒤죽박죽이 돼 있다.5.18세력을 옹호하는 것을 보수체제 수호라 말하는 것이 그런 착각이며,소수의 권력형 부정부패자들을 비호하는 것을 보수대화합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그런 오해다.
최근 각 당의 공천과정을 보면 그들은 마치 보수체제를 옹호한다는 이름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세대교체나 정치의 질(質)향상과는 상관없는 인사들을 마구잡이로 천거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국가의 중심에 대한 생각이 잘못돼 있고,어떻게든 총선에서 이겨야겠다는 것이 정략의 모두가 되어있는 한 내년 총선에서 정치의 질이 높아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또 환상이 되고마는 것 같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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