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병원장직 내놓고 해외서 의료봉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나이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더 커요."

오는 30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 외곽의 한 병원으로 의료 지원을 떠나는 황혜헌(黃惠憲.51.가정의학과) 정읍 아산병원 원장. 그는 2년 전 한국국제협력단(KOIKA)의 해외파견 의사 모집에 신청했다가 지난 2월 선발이 확정되자 아산재단 측에 사의를 표명했다.

베트남에서 黃씨가 근무하게 될 곳은 하노이 시립병원의 분원으로 병리사.간호사를 포함해 직원이 다섯명 안팎에 불과하다. 병상이 350개, 의료진이 300여명이나 되는 대형 병원의 수장 자리를 마다하고 낯선 나라의 작은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주변 무의촌 주민에 대한 진료를 떠맡는 동시에 병원을 꾸린 수익으로 직원들의 급료를 자체 해결해야 하는 부담까지 떠맡는다.

"주위에서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평소 '정말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고, 아이들이 커서 대학생이 된 지금이 적절한 시기라고 여겨 가족을 설득했습니다."

전북 익산 출신인 黃원장은 1972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지만 유신 독재를 반대하는 학생운동에 연루돼 본과 2학년 때 제적됐다. 이후 5년 동안 회사원 생활을 하다 뒤늦게 복학해 서른살에 공부를 마친 그는 30대 중반부터 정읍 아산병원에서 일해왔다. 이처럼 순탄치 않은 경험 때문에 그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그는 평소 호남 지역의 무의촌이나 도서 벽지를 찾아 주민에게 무료 진료 활동을 다니고, 정읍 경실련의 초기 설립 멤버로 참여해 4년간 공동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黃원장은 "중학생 때 미국의 한 자선단체로부터 월 2만5000원씩 장학금을 받은 보답으로 지난 10년간 베트남의 소년소녀 가장에게 매달 2만원씩 성금을 보내 준 적이 있다"며 "베트남과 인연이 많은 모양"이라며 웃었다.

정읍=장대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