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칼럼

지구온난화와 환경관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중국이 지구온난화 논의의 핵으로 부상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말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 됐다고 발표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 증가 속도가 선진국들의 감축 속도를 웃돈다는 것이다. 중국이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준수하더라도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앞으로 5년간 23억t 증가한다. 교토의정서가 37개 선진국에 부과한 감축목표량 17억t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유엔이 주최한 발리 기후변화회의에서 개발도상국의 대변자 역할을 했다. 선진국만 의무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개도국은 의무화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발리 회의가 성과 없이 끝나자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선진국만 감축의무를 지면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철강·시멘트·유리·화학·제지 산업의 경쟁력이 중국에 비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해 미 의회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의 상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매기는 법안을 제정하려 한다. 교토의정서가 정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실행하지 않는 미국이 무역 보복조치를 들고 나온 것은 위선적이고, 국제법 위반이며, 무역전쟁을 초래할 수도 있다.

미 의회에 상정된 지구온난화 법안은 2012년부터 미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규제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은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지 않은 나라의 상품에 대해서는 2020년부터 고율의 환경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했다. 미 산업계와 노조는 수입품에 대한 규제 시기를 앞당기라고 압박하고 있다.

주제 마누엘 바로수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유럽 상공회의소 등은 미국식의 무역제재를 지지한다. 이에 따라 EU도 수년 내에 비슷한 법안을 마련할 것으로 예측된다.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환경관세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에 위반될 수 있다”며 “환경보호를 위한 무역보복이 이어지면 전면적 무역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최근 미 하원 에너지·상업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지구온난화 법안은 실효성이 크지 않고, 미국을 위험한 길로 몰아 미 제조업과 농부·소비자층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썼다.

개도국들은 환경 관련 무역제재 법안이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논의를 미궁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중국 외교관들은 직접적 언급을 삼가면서도 불쾌감을 드러내며 강경론으로 치닫고 있다. 올 2월 유엔 환경회의에서 중국 측 수석대표인 위칭타이는 “지구 환경변화를 먼저 야기한 선진국들은 ‘주범’, 개도국들은 ‘피해자’로 취급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공식적 강경론에도 중국의 환경 관리들은 급증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우려한다. 이들은 해외의 환경관세가 중국 내 환경론자들의 입지를 강화시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힘을 얻을 것으로 전망한다. 판웨 중국 환경보호총국 부국장은 최근 중국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 기고에서 “환경문제로 중국의 국제사회 이미지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며 “더욱 강력히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고, 환경친화적 중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전면적 무역전쟁의 목표물이 될 수도 있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단결시켜 지구온난화 방지에 나서게 할 수도 있다. 중국이 좋아하진 않겠지만 환경관세는 교토의정서 이후 개도국이 환경정책을 바꾸도록 압력을 넣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무역전쟁이라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환경 관련 무역제재가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현실화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수단의 하나로 부상할 것이다.

로버트 컬리어 미국 UC버클리대 환경정책센터 객원교수
정리=정재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