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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안보, 허비할 시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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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나라 전체가 어수선한 가운데 우리 경제를 둘러싼 안팎의 사정이 고약하게 돌아가고 있다. 탄핵 쇼크에 출렁이던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는가 싶더니 나라 밖 스페인에서 발생한 열차 테러사건은 가뜩이나 고유가 추세를 보이던 국제 유가를 자극해 우리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예정대로 4월부터 감산을 강행할 것이라고 발표해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는 1990년 걸프전 이후 최고 수준인 40달러 선을 눈앞에 두고 있고, 우리나라 원유 수입의 70%를 차지하는 중동산 두바이유의 가격도 40개월 만에 최고치인 31달러 선을 넘어서고 있다.

한국은 에너지원을 사실상 100% 외국에 의존하고 있어 에너지 수급의 안정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제는 물론이고 안보도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진작부터 에너지 안보의 취약성을 탈피하기 위해 에너지 효율성 증대 및 대체에너지 개발,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포함한 새로운 에너지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있어왔다.

한국은행은 국제유가가 25달러에서 30달러로 오르면 물가는 0.5% 상승하고, 경제 성장률은 0.3% 정도 떨어진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또한 경상수지도 60억달러 적자 요인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의 기조는 유가가 25달러대일 것을 가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더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유가가 조만간에 안정을 되찾을 기미는 없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04년도의 세계 석유수요는 일일 기준으로 2.1% 상승했다. 이는 주로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일명 브릭스(BRICs) 국가들의 에너지 수요 증가 때문이다. 현재 이들 브릭스 국가의 1인당 에너지 소비수준은 한국.일본의 10분의 1 수준이다. 때문에 이들 국가의 소비수준 향상에 따른 수요증가가 불가피하다.

최근 겪고 있는 원자재 수급난의 상당부분이 중국의 고도성장에서 기인한 것을 감안한다면 중국 등 브릭스 국가의 에너지 수요 급증이 과거의 1, 2차 석유파동과 그로 인한 경제위기 못지않게 한국 경제에 버거운 도전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정부도 국제석유시장 전문가 협의체를 발족시키고, 승용차 자율 10부제 및 에너지 다소비업체에 대한 수요관리를 시행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유가 오름세의 지속에 대비한 고강도 대책을 마련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은 수요관리 대책일 뿐이며 현실적으로 그 실효성도 의심스러운 것들이다. 단기적으로는 고유가를 견뎌내겠지만 사실상 에너지를 100%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급구조를 고려할 때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눈을 주변국으로 돌려보자. 중국은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해 중동지역 외 지역에서의 에너지 수입원을 개발하는 데 열심이다. 중남미와 아프리카.러시아의 시베리아 원유 개발에 현재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이런 노력으로 중국은 이미 국내 필요량의 15%를 해외에 확보한 유전에서 생산해 국내로 공급하고 있다. 일본 또한 사할린 유전을 비롯한 해외 신규 유전개발에 적극적이며 최근에는 시베리아 앙가라스크 유전의 개발과 송유관 건설에 사활을 걸고 중국과 경쟁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산유량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의 자원을 동북아 역내에서 공급해 보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이들 두 나라의 에너지 확보 경쟁은 동북아 안보지도마저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한국은 에너지 부국 러시아를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면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원자재 및 에너지난을 겪을 처지에 놓여 있다. 한국도 이제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에너지자원 확보를 위한 중장기 계획을 새로 짜고 실천해야 한다. 에너지는 경제이고 안보이고 생존이며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권원순 한국외국어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