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현장 관찰] 2. 돈선거, 밥선거 사라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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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종빈 교수 명지대 정외과

'50배 포상금, 50배 과태료'가 대한민국 선거문화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6000원짜리 초콜릿과 9250원짜리 식사 대접을 받고 76만2500원을 토해내야 하는 초강력 부메랑이 요즘 예비 후보자와 유권자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 부메랑은 중앙선관위.경찰의 행정방침이 떠올렸고, 지난 12일 국회에서 개정된 정치개혁 3법의 바람을 받아 선거운동 현장을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

◇포상금제, 위력 발휘=과연 '돈선거'와 '밥선거'가 사라질까. 지난 주말 단속의 현장인 서울 중랑구선관위를 찾았다.

오장문 지도담당관이 반갑게 필자를 맞았다. 중랑구선관위는 이날 잡혀 있던 경찰서.구청.소방서.교육청.전화국 등 관계자들과 투.개표 선거관리 및 불법 선거 단속을 위한 협조 회의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吳담당관은"보름 전까지 거의 매일 돈봉투 사건이 신고됐으나 최근에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포상금 효과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후보자 측이 뿌린 돈이나 향응을 유권자가 증거와 함께 신고할 경우 5000만원 범위 내에서 받은 돈의 50배까지 포상금으로 받을 수 있게 한 제도다. 그는 "유권자의 신고로 후보자가 당선 무효 판결을 받을 경우엔 최대 1억원을 지급한다"고 강조했다. 吳담당관은 "후보자는 유권자가 언제 '선(選)파라치'('불법 선거 신고꾼'을 뜻하는 선거판의 은어)로 돌변할지 몰라 돈 뿌리기에 몸을 사리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돈 유통 구조가 더 은밀한 점조직 방식으로 지하화할 가능성까지 배제하진 않았다. 단속의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吳담당관은 "돈봉투를 후보자가 직접 전달하지 않고 하수인의 하수인, 또 다른 하수인을 내세우는 경우"라며 "적발된 하수인들이 자기 돈이며 후보자와 상관없는 돈이라고 주장하면 현실적으로 인과관계를 밝혀내기 어렵다"고 했다.

선거 감시가 이렇게 강화된 것에 대해 예비 후보자들은 어떤 반응일까. 한 정당의 선거 참모는 "예전엔 선거에 이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이번엔 당선 무효 문제까지 염두에 두고 선거 캠페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묘해진 선거 브로커=다른 선거사무소의 핵심 참모는 "내 손에 수백명의 표가 있다며 입당원서와 돈을 맞바꾸자는 선거 브로커가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밥 사달라, 술 사달라고 찾아오는 유권자가 아직도 많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최근 중앙선관위엔 '다단계 판매원 200명'을 거느리고 있다며 한명당 하루 13만원(3만원은 브로커 소개료)을 받기로 하고 이들을 선거운동원으로 동원해주겠다는 선거 전문 브로커가 적발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정치관계법의 개정으로 지구당은 없어지게 된다. 설사 지구당을 유지하고 싶어도 후원회 모금 한도가 대폭 줄고, 법인의 후원이 금지됨에 따라 불법 음성 정치자금이 아니고선 지구당을 운영할 수 없다는 게 선거사무소 관계자들의 얘기다.

세 과시와 상대 후보 기죽이기, 막말 충돌의 현장인 합동유세와 정당연설회도 이번부터 없어졌다.

◇규제 일변도 선거제도 부작용도=우선 유권자와의 접촉 공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듦에 따라 후보자들이 이들을 파고들기 위한 두더지 조직선거 운동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는 점이다.

제도적으로 고비용 정치를 추방했다곤 하지만 정치현장은 돈을 필요로 한다. 정치자금 수요의 규모 적정성을 면밀히 따지지 않은 일방적인 공급의 차단은 예기치 못한 새로운 불법을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 2000년 16대 총선의 지구당 평균 법정 선거운동 비용은 1억2000만원대였다. 그때 선관위에 회계 보고된 평균 지출액은 6000만원 정도였다. 이렇게 터무니 없이 작은 신고액은 의정활동 보고회 비용 등 상시적인 정당활동비, 당내 경선비 등을 선거 비용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이런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회계 보고 제도도 개선돼야 할 것이다.

공명선거는 유권자가 주도해야 한다. 최근 한 여론조사(KSDC.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에 따르면 '공명선거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후보자나 정당의 선거법 준수"라는 응답은 30%였지만, "유권자의 의식이 변화해야 한다"는 응답은 40% 이상이었다.

이 같은 유권자 의식 변화는 흥미롭다. 정치권의 변화를 국회의원이나 후보자들에게 맡길 게 아니라 유권자들 스스로 이뤄내야 한다는 의식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 같다.

정치개혁법의 이상이 선거현장에서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설렁탕과 돈봉투를 거부하고 불법 행위를 적극 신고하는 유권자의 의식혁명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선거 관련자들의 한결같은 얘기였다.

윤종빈 교수 명지대 정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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