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미군범죄"와 미국의 이중잣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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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오키나와(沖繩)주둔 미군병사들이 저지른 일본인 여자어린이 집단 성폭행사건에 대응하는 일본정부의 자세는 일견 답답할 정도로뜨뜻미지근해 보인다.
일본의 정부각료중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제가 된 미군 지위협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는 에토 세이시로(衛藤征士郎)방위청장관 뿐이었다.
정부대변인인 노사카 고켄(野坂浩賢)관방장관은 20일 에토장관의 개정요구 발언에 대해 『인간적인 발언』이라는 묘한 표현으로위로했다.국정을 책임진 장관이라면 좀더 신중히 발언하라는 충고같이도 들린다.
일본정부는 지위협정 개정에 소극적인 이유로 현행 규정으로도 일본의 수사권 행사에 별 지장이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그러나 속내는 역시 지위협정 개정이 美-日안보조약 개정논의의봇물을 터뜨릴까봐 두렵기 때문이다.쥐를 잡으려다 독을 깨는 사태는 피하자는 취지다.
美-日 두나라는 오는 11월의 정상회담에서 냉전종료에도 불구하고 양국간 안보협력체제는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할 예정이기도 하다.이에 화답하듯 미국도 월터 먼데일 주일(駐日)대사와 현지 미군사령관이 이례적으로 사죄하고 미군범 죄의 재발방지에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는등 일본내 여론을 가라앉히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한국언론이 미군범죄를 과장하고 있다』는 제임스레이니 주한(駐韓)美대사의 강변과는 사뭇 동떨어진 나긋나긋함이다. 일본은 미국과의 현행 지위협정이 美-獨간 협정에 비해 불평등하다고 난리지만,韓美행정협정은 일본의 경우보다 더욱 심하다.미국이 韓.日 두나라에 적용하는 이중잣대는 바로잡아야 한다.
아울러 절대다수의 일본각료가 피해자와 여론에 대한 인간적인 공감과 동시에 일본의 국익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잣대 교정작업과 함께 주한미군의 존재의미를 동시에 되새기는 냉정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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