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은 완성품 … 대학이 품질 보장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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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구치 기요후미 일본 리쓰메이칸대 총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일본 대학의 개혁 방향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태성 기자]

만난 사람 = 오대영 국제데스크

“리쓰메이칸(立明館) 대학은 최근 20여 년간 급속히 발전했다. 밑거름에는 리더십이 있고, 모든 교직원이 학교 발전을 위해 똘똘 뭉쳐 일해온 덕분이다. 지금은 세대 교체기다. 중요한 시기에 학교를 맡았기 때문에 주목 받는 것 같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이 매년 전국 일본 대학을 평가해 발표하는 『대학랭킹』 2009년판에서 총장들이 가장 주목하는 일본 대학 총장으로 지목한 가와구치 기요후미(川口淸史·62·경제학) 리쓰메이칸대 총장이 지난달 29일 서울을 방문했다. 나흘간 숙명여대·서울시립대 등 교류 대학과 고교들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그를 29일 저녁 롯데호텔에서 만나 “왜 가장 주목 받는 총장으로 뽑힌 것 같으냐”고 물으니 이같이 말했다. 또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30인회(중앙일보 등 개최)에서도 3국 간 고등교육 교류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그래야 동아시아 안정에도 기여한다”며 3국 간 학문 교류를 강조했다. 교토(京都)에 있는 이 대학은 역사가 100년이 넘는 사립대다. 2000년에는 규슈(九州) 지역 벳푸(別府)시에 국제화 대학인 아시아태평양대학(APU)을 설립했다.

-대학 총장에게는 기업·정당과는 다른 리더십이 필요할 것 같은데.

“리더란 외부 환경의 변화를 잘 판단해 필요한 개혁을 하는 사람이다. 특히 대학 총장은 교직원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다양한 전공을 가진 교수들의 의욕을 효과적으로 조화시켜야 개혁을 성공할 수 있다.”

-일본에선 대학 개혁이 한창인데, 특징은.

“그동안 일본 대학들은 연구와 학생 교육에만 집중해 왔으나 이제는 이를 뛰어넘어 젊은이들을 제대로 키워 사회에 내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 사회와 국민이 대학에 요구하는 것을 끊임없이 파악해 부응해야 한다. 일본을 넘어 세계에 맞는 교육과 연구 결과를 내놓는 것이 일본 대학 개혁의 궁극적인 목표다.”

-일본 사회가 대학에 요구하는 것은.

“일본 대학들은 상아탑으로 불려 왔다. 사회에서 떨어져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식기반 사회를 맞아 대학의 학문이 사회 곳곳에서 필요해졌다. 사회가 대학에 학생을 보내주듯이, 대학도 사회에 무엇인가를 돌려줘야 한다. 이를 위해선 사회에 닫혀 있는 대학이 ‘열린 대학’으로 변해야 한다.”

-‘열린 대학’의 의미는.

“지역과 사회에 대한 공헌이다. 지역과 협력해야 한다. APU를 개교할 당시 지방자치단체에서 적극 예산을 지원했다. 당시 일본 대학가에선 외지에 대학을 세우는 데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APU는 일본의 대표적인 국제화 대학으로 자리잡았다. 온천 관광지로만 유명했던 벳푸시의 위상도 달라져 대학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최근 우리 대학이 캠퍼스를 새로 만든 시가현도 교육 도시로 변모했다. 대학이 지역을 발전시키고 주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대학에는 자율 못지않게 사회적 책임이 중요한데.

“자율은 기본이지만, 대학도 졸업생의 학력 수준을 보장해야 한다. 완성품의 품질에 대한 논의다. 이를 위해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학업 성취도 조사인 피사(PISA)처럼 대학생의 지식이나 비판적 사고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표준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대학 졸업생들이 세계 어디서든지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대학 간의 건전한 경쟁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

-리쓰메이칸대의 구체적인 개혁 내용은.

“세계화가 화두다. 단순히 유학생을 많이 받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통하는 연구·교육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대학원 연구 기능을 더 키우려 한다. 지금까지는 기업이나 사회가 인재를 길러냈지만, 이젠 대학의 차례다. 또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교육의 중심이었지만, ‘좋은 대학이 무엇인가’라는 근본 질문이 나오고 있다. 세계 대학들이 경쟁하는 때에 도쿄대·교토대 등과 같은 과거 서열에 집착할 필요가 있는가. 우리는 세계적인 연구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몇몇 중점 연구 과제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올해는 ‘글로벌 개혁 연구 조직’을 만들어 인재와 자금을 집중 투입하려 한다. 정부·민간기업과의 공동 연구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리쓰메이칸대는 일찌감치 문·이과 융합 교육(통섭)을 중시했는데.

“어렵지만 생존 차원에서 도전해야 할 문제다. 환경 문제를 보더라도 문·이과 지식을 모두 알아야 해결할 수 있다. 현재 환경·금융·스포츠·문화유산 방재 분야에서 이런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문화유산 방재를 보자. 한국의 숭례문 화재 때 소방관들이 숭례문과 관련한 문·이과 지식을 알았더라면 남대문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통합된 지식을 가진 인재를 키우는 것은 모두의 숙제다.”

-10년 전에 APU 서울사무소를 설치하는 등 한국 학생 유치에 열심인데.

“한국 학생들은 매우 우수하다. 영어는 기본이고 일본어도 잘한다. 한국 학생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기대도 크고 취업 실적도 좋다. 그래서 많은 일본 대학이 한국 학생을 유치하려 한다.”

정리=이수기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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