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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논단>외국기업 왜 떠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얼마 전 유럽으로 출장가는 비행기 안에서 어느 일본 기업인과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공작기계 등을 생산하는 꽤 알려진 기업대표인 그는 영국 현지법인의 경영실태를 점검하고 체코.폴란드에신규투자를 검토하러 가는 길인데,일본의 항공 요금이 비싸 김포에서 우리나라 비행기를 탄다고 했다.「기업하기 좋은 나라」 찾아간다는 것이다.
『영국까지 멀리 갈 필요없이 이웃인 한국에 투자하면 항공요금도 비교할 수 없이 적게 드는데 무엇하러 그 멀리 가시오.』『한국으로 오시지 않겠습니까.』이런식으로 나는 그에게 농담반 진담반 우리나라에 투자하도록 권해보았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기도 하거니와 사회적 가치관과 문화의 유사성도 있고,언어 소통도 잘되니 유리하지 않겠느냐며 한국에의투자 이점을 장황하리만치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엔高 수렁으로부터 탈출을 위해 그도 對한국 투자를 여러번 검토해 보았지만 결국 이웃나라 한국을 뒤로하고 먼 유럽행을 택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기로선 한국기업이 발전하는 것이 불가사의하다고 했다.그 높은 금리와 비싼 땅값,그리고 달음박질하듯 급등하는 임금을 가지고 어떻게 고속성장을 하느냐는 것이다.자기네는 엔高하나만으로도 온 산업이 비틀거리는데 한국 기업경 영의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숙련 기능공 임금은 영국 기능공 수준을 능가하는것이고,그렇다고 한국 근로자의 생산성이 영국보다 높다는 보장이있느냐고 했다.거기에다 공장부지는 영국에서 평당 3만원인 반면한국은 평균 50만원 내외의 고가임은 물론이 고 도로.항만등 사회간접시설이 부족하여 서울~부산간 화물운송 비용이 태평양 횡단에 드는 비용보다 더 비쌀만큼 물류비가 높고,금리는 일본의 3배인데다 필요한 자금을 본사로 들여오는 것도 규제된다고 했다.그런데도 한국기업은 성장을 계속 하니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이쯤 듣고 나서는 더이상 한국에 투자하라고 권할용기를 잃고 말았다.
말 상대를 잘 만났다 싶었던지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외국인 투자에 대해 국민적 환대는 말할 것도 없고 금융.세제.토지 등의 지원이 적지 않으나 한국은 그런 매력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제 한국을 본국의 시설을 해외로 옮길 생산기지로서가 아니라 세계 11위의 전망좋은 수출시장으로 보고 있다고했다. 우리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고 적지않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터라 그의 말이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최근 우리나라에외국인 투자는 계속 줄어드는 추세인데 외국인 투자가 감소한다는것은 경제협력 강화와 선진기술과 경영기법 도입 등 외국인 투자가 우리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생각할 때,투자대상 지역으로서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사뭇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없다. 그러나 보다 큰 문제는 이렇듯 국내에서 기업할 여건(與件)이 외국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불리한 상황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시들시들 약화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포럼과 국제경영개발원(IMD)은 최근 95년 우리의 총체적인 국가경쟁력이 세계 24위인데 비해 경쟁국인 싱가포르는 2위,홍콩 3위,일본 4위,대만은 11위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산업생산 부문에서 최고점을 얻고 있 음에도 국가 경쟁력이 하위로 처지는 것은 익히 지적되었듯 금융산업의 낙후,사회간접자본의 미비,과다한 정부규제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있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애써온 우리 모두를안타깝게 하고 있다.왜냐하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 해답을 우리모두 알고 있는 터인데도 그리 안되고 있으니 말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그것은 기업이 금리.지가.임금과 같은요소비용에서 선진국과 같은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고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기업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가는것이 아니겠는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그것은 우리에겐 희망사항일 뿐인가.이제는 알고 있는 그 해답을 실천에 옮길 시책이 있어야 할 때가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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