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축제에도 평가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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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축제의 계절이다. 축제는 본래 무용한 소비행위이며 일상적 구조 전복의 희열이고 몽상가적 일탈행위이자 유희적 본성의 문화적 표현이다. 따라서 효율성과 시장가치를 최우선시하는 삶의 관점에서 보면 없어져야 마땅한 쓸데없는 짓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매년 3000여억원의 돈으로 1200개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돈과 명예 등을 위해 미친 듯이 뛰어가다 잠시 축제 속에 멈춰 선 현대인이 찾는 것이 무엇일까?

일본은 7400여 개, 프랑스는 1만4000여 개의 축제가 매년 열리지만 축제가 난립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축제가 자발적인 것으로 즐거운 것이라면 개수가 많은 것이 무슨 문제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지역 주민의 무관심’ ‘선심성 예산낭비’ ‘전문 기획능력 부재’ ‘일회적이고 과시적 이벤트’ ‘축제 콘텐트에 대한 심층연구 결여’ 등의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축제를 바라보는 이들의 편협한 시각과 소극적 놀이문화도 부정적인 축제평가에 한몫 거들고 있다.

 축제는 지역의 문화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에 기반하고 지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만족과 보람을 찾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이 같은 근본 원칙이 무시된 채 모객 수와 수익성만을 따지고자 한다면 현재 제기되는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축제적 자원의 ‘진정성’의 상실이라는 회복 불가능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축제의 문제와 지향점은 무엇인가.

서울의 연등축제는 화합과 상생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특정 종교인들의 축제라는 한계를 슬기롭게 넘어서야 한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된 강릉단오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발적 축제라는 자부심을 더욱 빛내기 위해서라도 국제관광상품화로의 외형적 발전 전략의 수행 과정에서 단오제의 본질적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울산옹기축제는 문화와 과학을 축제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외고산 옹기마을의 소박함과 존재 이유가 도시 문명 속에 흡수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동야생차축제는 고급스러운 차 문화를 전파하고 경작 체계를 바꾼 측면에서 평가할 만하다. 무안백련축제는 전통·예술·생태적 환경을 결합시키면서 지역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 그러나 부대효과인 경제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지역 내 소집단 이기주의나 폐쇄성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제주는 도새기축제와 고사리축제 등을 통해 제주 특산물의 가치와 의미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 그러나 접근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 마련과 외부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하면 축제의 시너지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축제는 다양한 자원의 잠재적인 가치가 일정한 시공간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것이다. 꽃이 피어 있는 시기는 극히 짧지만, 그 꽃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차가운 비바람을 이겨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축제의 화려함보다 축제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마도 축제만큼 길고긴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축제 예산의 70~80%를 공공 재원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축제의 현실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은 보다 엄격한 평가와 지원 체계를 정립하는 일이다. 축제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고, 지역별로 차별화된 지원 방향이 정립되고 분명한 평가 기준이 지역 특성에 맞게 수립돼야 한다. 지원할 때는 지역 활성화와 지역민의 관심 유도, 공동체 의식 함양 등을 고려해야 한다. 평가 기준은 축제 유형과 콘텐트, 축제 규모와 지역민의 참여 정도가 될 수 있다.

축제의 원칙이 바로 서 있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 축제의 모방에 급급하거나 주최 측의 욕심을 설익은 축제 개최로 채우고자 한다면 앞으로도 한참 동안 상당한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류정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정책기획팀장